▲ 수원예총 회장
‘멀지 않아 도시는 쓰레기로 뒤덮인다.’ 환경론자들의 경고성 발언쯤으로 생각했던 이 말이 몇 해 전 이야기다. 당시에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말은 현실이자 경고의 말이 되고 있다. 수원시가 한 달 전에 ‘쓰레기 사랑과 전쟁’이라는 피켓을 들고 나섰다. 비단 수원뿐만 아니다. 크고 작은 도시 구별 없이 이와 같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행정가의 목소리는 원대하고 큰데, 정작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할 시민들의 의식이 뒤따라주지 않기에 그렇다. 오죽하면 쓰레기와의 투쟁을 ‘쓰레기 전쟁’이라고 서슴없이 부를 정도니 말이다.

 

‘쓰레기’는 쓸모없어져 버려야 될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물질만능시대, 집안에 버려지는 물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늘어나는 물량 못지않게 무덥고 습한 여름철에는 유독 문제다. 음식물쓰레기는 대부분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등으로 이뤄진 유기물이다. 세균의 온상이 되어 세균을 옮기는 주범이 되어 그만큼 폐해가 심하다.

그간 수원시가 쓰레기 행정을 주민의 자율적 자정(自淨)활동으로 추진하여 종량제 봉투 사용률이 4월 대비 26%, 지난해 5월 대비 32% 각각 늘어났다고 한다. 구도심지구인 세류1동은 60%까지 증가했다. 동장이 상습 쓰레기 투기 장소에 천막을 치고 밤샘을 하며 감시하는 일도 벌어졌다. 동네 골목길에 서 있는 전봇대주변에 주로 상습적으로 쓰레기를 버린다. 아무리 경고문을 붙여나도 소용이 없다. 이 점에 착안하여 구청장과 주민이 나서서 ‘전봇대 한 평 텃밭’을 만들어 꽃을 심어 놓는 진풍경까지 등장했다. 선진도시를 가늠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생활쓰레기와 자동차문화의 한 단면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수부도시-수원은 ‘사람이 반가운 휴먼시티’를 추구하고 있다. 쓰레기 때문에 도시 곳곳이 지저분하고 마구 버려진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불쾌한 냄새가 난다면 사람을 반기는 태도일까. 살기 좋은 환경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민으로서 자긍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아직도 공중도덕 의식이 엷은 우리 국민들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쓰레기문제는 공직자가 아닌 시민의 몫이다. 쓰레기 배출과 분리, 마구 아무 곳에는 버리는 투기(投棄)는 어디까지나 주민의 문제다. 시민의식의 변화 없이는 쓰레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동안 종량제 봉투 사용률이 낮고 재활용품과 일반쓰레기를 섞어 자신의 집 앞이 아닌 다른 곳에 남몰래 무단 투기되어 몸살을 앓아 왔다.

쓰레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단체장으로 뽑히려면 ‘쓰레기와 물’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표가 모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일까. 쓰레기행정을 어느 만큼 잘했느냐, 수돗물 공급을 어느 정도로 잘했느냐에 여성유권자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높은 도덕의식을 가졌지만, 극히 일부 시민들이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 새벽 출근하여 밤늦게 귀가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동직원이나 통장이 맨투맨으로 쓰레기배출 방법에 대한 교육이 이어져야 한다. 언어소통이나 한글문자 해독이 어려운 다문화 가족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시행하더라도 시민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도시가 쓰레기 재화(災禍) 속에 묻혀 있길 바라는 수원시민은 없을 것이다. 옆집이, 옆 점포가 쓰레기 멘토가 되자. 그래서 분리수거를 하지 않던가, 시커먼 봉투에 담아 버리든가, 배출시간을 어기거나, 아무 곳에나 버리는 이웃이 있으면 내가 나서서 한마디씩 해야 한다. 일본은 소위 왕따를 시켜 주민들이 대화도 하지 않고 지낼 정도로 외면한다.

쓰레기전쟁을 시행한 지 한 달 결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지속해야 한다. 시민들이 생활화돼야 한다. ‘쓰레기 사랑과 전쟁’ 그것은 총성이 들리지 않을 뿐이지 열전(熱戰)보다 더 뜨거운 전쟁이다. 공직자나 시민들은 이 점을 잊지 말고 일깨우고 실천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품격 높은 도시를 만들어 가는 ‘사랑과 전쟁’이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