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수원시대야 말로 내 문학생활의 절정이 될 것입니다."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명되는 고은 시인이 수원시민이 되고나서 한 말이다. 지난 달 29일 연무동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지역주민들에게 이사 떡도 전달했다. 고 시인은 30년 동안 살며 창작활동을 하던 안성시 공도읍 대림동산 주택단지를 떠나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자락으로 문학둥지를 옮겼다.

 "나는 안성에서 30년을 살면서 130여권의 저술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 이전 서울시대의 것들을 훨씬 능가한다"며 "그런데 이로부터 시작되는 내 삶의 결정적인 시대인 '수원시대'야말로 내 문학생활이 하나의 절정을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에 자신의 삶이 스미도록 작품 활동을 해 나가겠다고 피력했다.
 
"어떤 식물 종(種)은 턱없이 먼 곳으로 가서 그곳의 토착종이 되기 일쑤이다. 누님이나 누이의 꽃인 옥잠화도 언젠가 먼 곳에서 건너온 꽃 아니던가."고은 시인의 글이다.

'먼 옛날 세습 방랑시인으로 출생'한 것이 고은 시인의 전생 연보라고 적고 있다. 그의 말대로 "고향은 태어난 곳이 아니다. 내가 사는 장소와 내 조국 그리고 세계 도처의 우정과 천애 속에서 그 모든 곳에 충실한 일원이 되기를 기약한다"며 "이제 나는 수원 귀신"이라고 선언했다. 고 시인다운 표현이다.

고은 시인은 수원이 스카우트했다. 지난 해 수원포럼에 초청강사로 왔다, 만찬자리에서 염태영 시장과 나눈 대화가 단초가 됐다. 그 자리에 필자도 합석했다. 안성 대림동산을 떠날 계획이라고 고 시인이 밝혔다. 어디로 갈려고요? 용인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무슨 연고나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왕이면 인문학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으로 오시죠’ 이 말이 발단이 되었다. 긴 시간이 흘러 마침내 고은 시인이 수원에 스카우트 됐다. 물론 다른 지자체에서도 제의가 있었다. 본래 스카우트(scout)란 각지를 돌아다니며 우수한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 인재를 물색하고 찾아내는 일이다.

그는 여든이면서 여전히 현역이고 문단의 한복판에 있다. 수많은 화제와 관심을 불러 모은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문학에는 문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분야의 글쓰기가 다 담겨져 있다.

그는 시인일 뿐만 아니라 소설가요, 비평가요 수필가이며 산문 필자로서도 많은 작품을 드러내고 있다. 동화, 동시집, 전기, 번역집 등 그야말로 문학 전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낭독과 강의로 외국의 저명한 문학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이나 가수 양희은이 불러서 유명한 노래 <새노야> 역시 고은의 시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이 적어도 20여개 나라에서 읽히는 시인이다.

특히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라 일컫는 연작시집『만인보』같은 대작은 유례가 없는 독보적인 업적이다. 그가 만났던 특정 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룬 작품이다. 25년 만에 전 30권, 총 작품 수 4001편으로 2010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앞으로 유서 깊은 수원의 향기에 젖어져서 나 자신도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기대로 가슴이 떨린다고 수원에 자리 잡은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수원시는 고 시인의 이주를 위해 광교산 자락에 있는 시소유 지하 1층, 지상 1층의 기존 주택을 연면적 363㎡ 규모로 리모델링해 제공했다.

한 지역주민은 ‘광교산 기운을 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시인 역시 광교산은 중세시대 국사(國師)가 두 사람이나 나온 유서 깊은 산으로 산세의 은혜를 입을 예감에 차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고 시인은 오랫동안 구상해온 ‘처녀’, ‘운명’ 등과 함께 ‘수원시편’을 집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원시가 문학대가 고은 시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수원은 인문학 도시를 지향하는 도시다. 시민인문학의 발원지로서 수원이 거듭나기 위해서도 그의 문학 세계가 필요하다. 수원의 인문학 흔적과 삶의 자취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수원이라는 공간을 자기화해 꾸준한 문학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구현되길 바란다. 수원시가 그를 스카우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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