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과 물도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뛰어난 인물을 만나고 또 그들이 남긴 글이 있어야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 때맞춰 수원화성박물관이 번암 채제공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열었다. 올해는 수원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된 지 220주년이 된다.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城役)의 총리대신을 지낸 그의 생애와 활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번암 채제공의 생애와 활동을 주제로 석학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학술대회를 병행(竝行)하여 자못 뜻이 깊은 특별기획전이다.

우리는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만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시민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자신의 문화적·지적 갈증을 해소하길 갈망한다. 채제공 특별전이 그걸 해소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박물관은 여러 가지 방법의 다양한 전시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문화적·예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수집하여 보존하고 전시·해석하는 기관이다.

박물관의 역할은 단지 유리 공간 안에 소장품을 수집하여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소장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도 채제공 특별전은 성공한 전시다. 채제공 후손이 기증한 유물과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후손의 소장유물을 시계열(時系列)로 전시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개혁도시-수원화성을 연 정조대왕의 충신이자 도승지,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채제공 관련 최초의 기획전이라는 점에서도 그 이름값을 더한다. 그는 현륭원 조성, 용주사 창건, 수원읍치 이전, 화성성역에 이르기까지 수원과는 각별한 인연을 가졌기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우리 민족사는 모든 사람이 힘과 지혜를 합쳐 이루었지만, 그 중에서도 훌륭한 공헌을 한 인물을 간추려, 그 분들의 문화 창조와 활동을 되새겨 보는 것은 의의가 크다. 조상들의 뛰어난 업적과 그 정신을 통해, 후손들은 자부심과 이 나라를 무궁토록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박물관을 ‘호기심의 상자’라고 한다. 오늘은 무슨 전시가 있을까. 시민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휴식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꿔가야 한다. 박물관을 스스로 찾는 사람들은 드물다. 박물관은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평생교육기관이다. 도서관은 이용법을 가르치지만 박물관에서는 지켜야할 예의만 있을 뿐이다. 따분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장소가 아니라 가볍고 유익하고 즐거운 장소로 시민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다양한 방식의 폭넓은 교육, 그리고 관람의 만족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박물관은 관광지가 아니다. 도서관이 활자매체의 정보를 제공한다면 박물관은 유물과 표본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정조대왕은 채제공을 항상 국사(國士)로서 대우했다. 채제공을 화성유수로 발탁한 것은 원로를 임명하여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화성신도시 기반 조성 작업이 시작되었다. 화성의 대표적인 건물인 팔달산 정상부에 있는 화성장대의 상량문(上樑文)도 채제공이 지었다. 그곳은 정조가 호령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채제공은 5년간 재상으로 있으면서 정조와 서로 의지하기를 물과 물고기 같고, 의리로는 비록 군신(君臣)사이지만 정으로는 부자 사이와 같을 정도로 지냈다. 다산 정약용은 채제공을 고금에 유례없는 하늘이 낸 인중호걸(人衆豪傑)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하고 모든 백성들과 소통하며 만물을 포용하는 도량이 있는 대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번암 채제공 초상이 많이 그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적 위상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예로부터 ‘어진 사람 세 명이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린다.’고 했다. 모든 관리와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재상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리였다. 유물은 기억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채제공의 유물이 수원에 남아 있다는 것은 매우 뜻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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