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화성행궁 광장 앞에 들어서는 미술관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기공식을 갖는다. 반가운 일이고 자못 뜻있는 쾌거다. 도시의 격을 높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온 현대산업개발이 수원시민에게 주는 선물이다. 3일 후에 기공식을 갖게 될 가칭 ‘수원아이파크(IPARK)미술관’이다. 얼마 전에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이 입주한 수원SK아트리움에 이어 예술인들의 오랜 숙원인 미술관이 내년 말이면 그 얼굴을 드러낼 것이라 기대가 크다. 예술의 도시-수원으로 가는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는다.

바야흐로 미술 팽창시대다. 천지가 미술로 꽉 차 있다. 아니 하늘과 땅 사이가 미술로 범벅이 되어 미술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간 수원은 전국 기초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120만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는 도시였다. 자랑할 만한 이렇다 할 미술관이 없어 미술인들은 물론 예술인들은 사실 주눅이 들 정도였다. 더더구나 미술관은 박물관, 도서관과 함께 한 도시의 3대 기본시설인데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난 해 예술인들이 모여 수원예총이 주최하여 ‘왜 수원미술관이 세워져야 하나’ 세워진다면 ‘행궁광장 앞에 세워져야 한다.’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건립을 건의한 바 있다. 요즘 정치판의 삼류 쇼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오죽하면 ‘국회(國會)를 국해(國害)’라고 비아냥하는 글자까지 나왔을까. 혼탁한 사회일수록 참예술가가 그리운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우리시대의 청량제로 구원을 줄 것이기에 그렇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대가 있다고 했다. 반듯한 미술관은 진정한 미술가의 탄생을 기다린다. 정체성을 기본으로 빼어난 창작품이 태어나게 할 언덕이다. 미술가로 살아남는 법, 그것은 진정한 창작에서 해답을 구하게 한다. 진정한 창작은 물론 미술가가 생산해 내지만 그러한 여건 조성은 우리 시대의 역할이다. 위대한 예술은 작가와 시대의 합작이다. 한 도시의 예술?문화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일견 정치, 경제 등의 그늘에 가려 별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예술?문화정책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다. 예술과 문화는 국력이다. 정통 미술관 착공을 계기로 예술?문화에 대한 재인식이 절실하다. 그간 수원문화재단이 앞으로 세워질 미술관의 성격과 운영체계에 대한 폭넓은 담론을 펼쳐 온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준비가 없으면 '문화IMF'를 맞을 수 있다. 미술관이 시민과 격리되면 안 된다. 무슨 요새처럼 되도 안 된다. 우리는 그동안 허울만 그럴듯한 전시형태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우리는 미술전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고뇌가 없는 미술활동은 지양돼야 한다. 미술계 역시 속도감 있게 변하고 있다.

아무리 정통 미술관이라 할지라도 멋스러운 외양(外樣)에 운영을 잘하면 시민들의 공간으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미술관 하면 일반 시민의 삶과 거리가 먼 남의 동네로만 여겨지지 않게 해야 한다. 미술관이 들어서는 곳은 행궁광장이다. 불특정 다수인이 모여드는 광장이다. 미술전문가나 애호가만이 쉽게 들어가는 공간이 되면 안 된다. 재미없는 미술관, 괜히 시민으로 하여금 주눅이나 들게 하는 미술관은 사양해야 한다. ‘미술의 공동묘지 같은 미술관’은 곤란하다. 미술관은 결코 미술작품의 삶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마치 미술작품의 봉안처(奉安處)이거나 성역(聖域)이 되어 꿈틀거리는 미술을 생포하여 박제화(剝製化)하는 것은 곤란하다. 형식과 내용의 참신성으로 미술계 안팎으로부터 주목을 끄는 기획전이 이어져야 할 듯하다. 프랑스의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앙드레 말로는 예술?문화정책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지원’을 강조한 바 있다. 지원은 별로 없고 간섭만 지나치면 미술관 운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현대산업개발이 미술관 건물하나 거창하게 지어놓고 난 후 시에 기부채납(寄附採納)되면 운영은 돈 벌어 알아서하라는 경우가 있으면 안 된다. 사실 작품구입비가 한 푼도 없는 미술관은 진정한 미술관이 아니다. 시가 격려하고 재정적으로 지원은 할 수 있으나 창작행위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미술관은 작품의 수장(收藏)과 전시라는 고전적 기능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 예술문화생산의 장소이고 관람객들의 지적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복합적 공간이 돼야 한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