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우리들 삶에는 백 마디 말보다 한 편의 시(詩)가 절실한 순간이 있다. 시는 가장 잘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진다. 문인들이 언어를 가다듬는 일은 심성을 가다듬는 일과 통한다. 문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문학공간이 수원시에도 마련된다. 새해 기쁜 일이다. 국제적인 생태교통축제가 열렸던 행궁동에 3층 규모의 기존건물을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수원문학의 집’이라는 간판을 붙이게 된다. 반겨야할 일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란 낱말은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말이다. 그 시작이란 단어에는 무한한 희망이 담겨져 있다. 비록 새 건물이 아니더라도 한 발자국을 띤다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수원시의 의지가 있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입주한 후에 활동하는데 문학공간이 좁으면 차후에라도 새로운 터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에 그렇다.

수부도시-수원시에 ‘문학의 집’ 하나 없다는 것도 사실 얼굴 들기 부끄러운 일이었다. 인구로나 재정규모로나 어느 기초자치단체와 비견할 수 없는 도시가 아닌가. 수원은 인문학도시를 지향하는 도시다. 인문학의 기저(基底)에는 문학이 자리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수원시의 의지로 ‘수원문학의 집’이 탄생하게 되어 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웬만한 도시에는 문학관이 있다. 인구 5만 미만인 도시에도 대규모 문학관이 좋은 위치에 세워져 문학의 향기를 그 지역에 뿜어내는 문학발전소가 되고 있다. 필자가 정남진(正南鎭)이라 불리는 장흥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전국시인대회가 그곳에서 펼쳐져 경향각지의 내 노라는 문인들이 모였다. 채 5만도 안 되는 군인데도 산기슭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문학관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어 부러움을 느꼈다. 이제 그 부러움을 수원을 찾는 많은 문인들이 인문학 도시-수원에서 느끼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언어의 성찬(盛饌)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문학의 집’은 문학 창작의 공간이자 우리 사회의 거칠어진 언어를 가다듬고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게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학은 인간의 심성 그 자체를 내용과 형식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유일한 예술이다. 삶의 다양한 경험과 충동에 균형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심성으로 빚어지는 ‘수원만의 문학’ 과 ‘수원다운 문학’이 꽃 피고 자라나는 둥지가 되길 바란다. 문학은 전문 문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을 찾는 시민 모두의 영역이다.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우리네 삶은 시각적 자극에 열을 올린다. 스마트 문화가 더욱 발전할수록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 한편을 음미하고 그 깊은 정서의 세계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낭만이 생활의 어느 구석에도 자리하기 어렵다. 삶이 갈수록 팍팍해 지기에 더더욱 그렇다. ‘문학의 집’이 이 일을 벌려 가야 한다. 잃어버린 문학정신을 일으켜 시민들의 삶의 한 가운데에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운영의 주체가 될 문인단체는 처음부터 욕심 낼 일은 아니다. 차근차근 운영계획을 세워 서두르지 말고 많은 문인들과 시민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게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라지는 문인들의 초기 작품이나 그와 관련된 유물을 수집하여 전시할 공간도 필요하다. 문학 강좌나 관련 프로그램도 창의적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도 요구된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문학 작품만을 쓰고 읽는 것에 머무는 작업이 아니다. 아름다운 언어를 사랑하는 것이며 ,아름다운 마음을 사랑하는 일이다. 아무쪼록 ‘수원 문학의 집’ 개관을 통해 시민들의 문학 사랑과 문화지수가 높아지길 기대한다. 사람은 누구나 문자나 문학의 영향을 받아 그 영양분을 몸과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더 많은 문인과 시민들의 공유와 향유의 문학공간으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 시작이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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