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사진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 실제의 기록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기록으로 하여 우리들은 현실의 공간을 탐구하고 사색하며, 발견하고 증명할 수 있다. 오늘날 사진을 제쳐놓고 역사를 말할 수 없다. 갖가지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은 사진의 기록능력에 의한 제2의 현실로서 재차 역사로 되풀이되기에 그렇다.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으로 70~80년대 수원을 만날 수 있는 ‘옛수원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그 당시를 ‘약진(躍進)의 시대, 수원’이라는 주제로 오는 3월말까지 박물관에 전시된다. 유신독재와 새마을 운동, 반공과 계몽을 위한 동원이 일상이던 시대였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우리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던 시대이기도 하다. 수원은 20만에 불과한 전원도시에서 60만이 넘는 산업도시로 바뀌었다. 수원은 식량자급의 염원을 일거에 해결한 통일벼 탄생지로 녹색혁명을 선도했다. 삼성전자와 선경합섬으로 수원은 경제도시로 활기차게 약진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옮겨와 수부도시로서 변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진의 기록성은 큰 의미를 가진다. 시민 누구에게나 당시를 만나게 한다. 사진은 단순히 기계나 기술의 조작이 아니고 혼돈된 현실의 형태에다 질서를 부여한다. 카메라 앞에 있는 현실을 조직적으로 집약해 이것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 단순히 본 것만을 전달한 것이 아니다. 본 것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가를 전달해 준다. 관람객들에게 상상케 하고 깊이 느끼게 한다. 본래 사진의 본질과 속성은 기록에 있다. 그 기록은 역사적인 의의로 연결된다고 생각할 때. 이번 ‘옛수원 사진전’이 지닌 의미와 영향은 자못 크다.

사진은 ‘진(眞)을 찍는다(寫)’라는 의미다. 과연 사진은 진실만을 찍는 것일까? 진실의 거울이 아닐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의한 거짓이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의 사고와 태도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 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거짓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모두 진실을 찍고 그것을 참되게 표현하고 승화하려고 한다. 리얼리티(reality)로 충만 되어야 만인의 공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사진의 거장 앙리 까르띠에 브래송은 망원렌즈나 광각렌즈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몽타주나 특수기법도 거부한다. 그는 언제나 사람의 시각과 가장 가깝다는 50mm 표준렌즈만을 사용한다. 브래송은 렌즈나 몽타주 등의 특수기법으로 이루어지는 왜곡성이나 환각적인 이미지는 사진의 본질인 진실성을 유린하는 것이 때문에 그렇다.

수원박물관이 기획한 이번 70~80년대 ‘옛수원 사진전’은 한마디로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준 전시다. 사진의 본질과 속성을 꿰뚫는 기록성과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성향의 정신으로 일관된 사진작품에서 생생한 생명력과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역하다. 사진자료 수집과 해설에 무게감을 둔 전시임을 관람객들은 쉽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생활 속에서 얻어진 수많은 사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즘 읽는 문자보다 보는 사진영상 쪽을 더 좋아하기 경향이 있다. 사실의 목격자, 역사의 증언자, 또는 진실의 기록자로서 의미가 있고 흘러간 역사의 마디에다 무언가를 새겨두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민관람객의 눈으로 당시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현장을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고 직접적인 경험을 얻은 듯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빛바랜 한 장의 옛사진이 몇 천 단어의 명문(名文)보다 훨씬 감동적일 수 있다. 인구 120만을 향해가는 현재의 수부도시-수원을 70~80년대 ‘효원의 도시’에서 ‘활기찬 수원 건설’까지 약진수원의 온 모습을 되새겨보는 옛사진전은 한 편의 대서사시다. 정서적으로 호소하고 가슴으로 읽을 수 있는 값진 옛수원 사진을 시민의 품에 안겨 준 잘 짜여 진 사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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