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문화의 시대, 시민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삼는 문화예술관광도시 육성과 더불어 공공디자인이 사회적 이슈가 된지 오래다. 공공디자인을 통해 발전하는 도시는 시민들의 일상에서도 진정한 품격을 이끌어 낸다. 이는 디자인이 예술과 문화의 범주 속에서 라이프스타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동네 정도의 차원이 아닌 새로운 도시환경개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이젠 시민이 도시의 물리적 수혜의 차원을 넘어서 도시와 함께 예술적 감수성을 공유할 때이기에 그렇다. 공공디자인은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갖춰야 할 사회적 인프라와 같다.

나는 지난 주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심야에 행궁동 골목길을 거닐었다. 세계적인 생태교통축제가 끝난 지 다섯 달이 가까워오는 현장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다. 길마다 세워진 차량은 축제 이전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골목집마다 걸린 100여 개의 안심등(安心燈)은 졸지 않고 여전히 밤길을 밝히고 있어 반가웠다. 한밤중에 골목길을 오가는 여성 등 약자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불을 밝히는 안심등은 생태교통축제가 남긴 산물이다. 도시는 성장하고 발전하지만 시민들의 삶과 문화는 안전하고 편안하기를 원한다. 안심등을 두르고 있는 한지에 한글서체와 매화그림이 불을 먹어 더욱 선명하다. 안심등은 단순히 어두운 골목길을 밝혀주는 일차적 목적의 등(燈) 몇 개를 설치하는 차원이 아니다. 도시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과학이자 예술이다. 도시경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특히 야간 조명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세계의 관광명소는 하나같이 밤을 밝히고 있지 않은가. 낯선 관광지에서 아름다운 추억과 로맨틱한 환상을 심어주는 일등 공신은 단연코 도시조명이다.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밤의 색채다. 우리는 도시를 살아가며 내 삶에 환경이 어떻게 돼야 하는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행궁동골목 집마다 걸린 안심등 제작에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안심등을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제작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시 주택건설과 남기완 과장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물이다. 장소나 시간적 맥락에서 볼 때 어려운 일이다. 대문 앞에 걸린 안심등은 가로와 폭이 14cm, 높이가 42cm 정도로 크지도 작지도 않게 조화를 이루는 크기로 제작됐다. 안심등마다 부드럽게 이어진 서체가 한지에 묵향이 번져나는 듯하다. 매화, 국화 등의 문인화가 어우러져 더욱 정갑이 간다. 등마다 달리 씌어 진 글귀도 마음에 와 닿는다.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릿따운 꽃망울에 맑은 향 머금으니 꽃 중에 왕이로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니라’,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아름답고 고운 것 보면 그대 생각이 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등 다양한 아름다운 한시(漢詩)구절이 오늘 따라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눈발이 나리는 골목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도시는 시민 모두의 행복한 삶과 고른 문화향수의 기회를 추구한다. 안심등은 낙후된 골목길의 격을 높였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인공물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사회적 관계와 고유한 문화를 형성한다. 골목길은 샛길이며 고샅이다. 큰길 사이로 난 작은 길에 새로운 것이 생겼다. 도시는 그 지역의 개성을 표현하고 지역이 가진 아름다움의 집합체다. 내 집을 디자인하듯 내가 사는 거리, 내가 사는 동네를 디자인하고 공동의 향유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거리나 동네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의식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심등은 역사성과 정체성 있는 도시로의 모습, 매력적인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고자 하는 단초다. 시내 특화된 거리 옆 골목 동네에도 점차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밤 얼굴은 또 다른 모습으로 행궁동 주민들에게 다가온다. 깜직한 형태로 디자인된 안심등은 동네의 모습을 더욱 보기 좋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도시를 창조했다.’는 말처럼 도시는 인간의 인공적 공간 점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소다. 비록 작은 안심등이지만 예술품처럼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골목길을 아름답고 활기차게 만드는 매개체로 활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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