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關東)대지진 발생 92주년을 맞은 1일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도쿄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일본 도쿄도(東京都)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9·1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약 100명이 현장에 모여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진상 규명과 배상을 촉구했다.

실행위원회 위원장인 요시다 히로노리(吉田博德) 일조협회도쿄도연합회장은 "아무 죄도 없는 조선인,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인 6천 명 이상 학살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무대신이던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 1868∼1949), 아카이케(아카이케 아쓰시<赤池濃, 1879∼1945>) (당시) 경시총감 등의 책략에 의해 유언비어가 퍼져 그 결과로서 일어난 큰 사건이라는 것은 이미 분명하게 돼 있다"고 국가의 책임 문제를 거론했다.

요시다 회장은 "조선인 희생자의 사건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제대로 조사하고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도(東京都) 지사는 도쿄도 관계자를 보내 대독한 메시지에서 "이런 불행한 사건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고 누구든지 안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 사실을 풍화시키는 것 없이 세대를 넘어 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일 한인 무용가인 김순자 한국전통예술연구원 대표가 진혼무로 희생자의 넋을 달랬고 참가자들은 묵념하고 헌화했다.

간토학살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사가미(相模)만을 진원지로 발생한 규모 7.9의 대지진(간토대지진)이 도쿄를 비롯한 간토 지방을 강타하고 나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재일 조선인·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이 다수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됐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인 자경단, 경찰, 군인이 조선인 학살을 주도했다.

학살 희생자는 6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초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는 학살 피해자 수에 관해 약 230명(당시 정부조사), 약 2천610명(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일본학자> 조사), 약 6천650명(재일조선인조사) 등 여러 견해가 있어 확정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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