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가 커 올해 단풍이 유달리 고울 것이라던 기상청 예보와 달리 심각한 가을가뭄 때문에 본격적 단풍철을 코앞에 두고도 전국 유명산은 물론 도시 근교산까지 나뭇잎들이 심하게 말라가고 있다.

◇단풍은 커녕 마른 잎들만 …

지난 주말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고 남편과 함께 집 근처 경기도 청계산에 올랐던 오모(28ㆍ여ㆍ과천시)씨는 산 곳곳에서 나무에 달린 잎사귀들이 심하게 말라 있는 현상을 목격했다.

오씨는 "본격적 단풍이 들기 전인데도 군데군데 나뭇잎이 누렇게 말라 종잇조각처럼 부스러지는 현상이 심해 가을산 같지 않고 초겨울 산 같은 느낌마저 들어 을씨년스러웠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전국 유명산부터 도시 근교산까지 거의 동시에 목격되고 있다.

유달리 고운 단풍으로 유명해 최근에도 매일 수천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강원도 설악산의 경우 많은 나무의 잎들이 말아 오그라들고 부서지는가 하면 그나마 물이 든 단풍도 검은 반점이 많이 생기고 있다.

지난달 중순 해발 1708m 대청봉 정상을 시작으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현재 해발 700m까지 내려왔지만 대청봉에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잎마름 현상이 더욱 심해 많은 등산객들이 기대만 못한 풍경에 실망하고 있다.

충북 속리산 국립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천황봉과 문장대 부근의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않고 잎이 누렇게 말라 떨어지거나 타들어가고 있다.

도심 근교산으로 주말마다 수천명의 등산객들이 찾아오는 경기도 수원 광교산에서도 잎마름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멀리서 산을 바라보면 마치 빛바랜 풍경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가을가뭄이 단풍 망쳐"

전문가들은 기상청 예상과 달리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못한 것을 올해 가을가뭄이 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성주한 박사는 "수분이 일정하게 유지된 상태에서 생리활동이 진행되야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 수 있는데 올해는 가을가뭄이 심해 나무에 스트레스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9월 이후 누적 강수량 자료를 보면 충북 보은이 21.9㎜(평년 153.4㎜), 강원도 속초가 112.8㎜(평년 246.1㎜), 경기도 수원이 21.9㎜(평년 159.8㎜)의 강수량을 기록해 평년 강수량의 13.7%∼45.8% 수준에 머물렀다.

국립수목원(구 광릉수목원) 신창호 박사는 "가을이 접어들며 내내 건조했던 날씨가 기본적으로 큰 영향을 준 데다가 일부 고산지역의 경우 부분적 냉해도 찾아온 것 같다"며 "충남 가야산 정상부근 현장조사를 통해 마름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푸른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기상청 응용기상연구실 김헌애 주임은 "평년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강수량과 최근 지나치게 높은 낮기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풍이 예상처럼 곱지 못한 것 같다"며 "아직 단풍이 시작되지 않은 남부지방의 경우 강수가 제공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울상짓는 사람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풍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경기를 조금이라도 살려보길 바라던 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오는 21~23일 단풍축제를 개최하려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는 충북 보은군과 주민들은 '단풍 없는 단풍축제'를 우려하고 있다.

속리산관광협의회 최석주(59) 회장은 "해마다 이맘때면 천황봉과 문장대 부근서 울긋불긋한 단풍이 시작됐는데 올해는 예전같이 고운 단풍이 들지 않고 있다"며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축제를 위해 메마른 나무에 물이라도 뿌려주고 싶은 심정"고 걱정했다.

같은 시기 경기도 유명산 단풍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가평군 설악면 주민 백승남(54)씨도 "가뭄이 심해선지 단풍 색이 곱지 못해 걱정"이라며 "그래도 마른 참나무가 많은 능선에 비해 단풍나무가 많은 계곡 쪽은 사정이 좀 나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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