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구 이목동 해우재에 근무하는 이원형 관장으로부터 지난 주 초 전화가 왔다.

“형님, 16일이 초복인데 삼계탕 한 그릇 함께 하시지요. 심재덕 시장님께서 쏘신답니다”

‘아니 돌아가신 지 벌써 13년이 넘은 분이 무슨 삼계탕을 내신대?’라고 대답하려다가 “가야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가야지, 아무렴”하고 대답했다.

몇 주 전 잠 안 오는 밤 인근 단골집에 들렀을 때 우연히 고 심재덕시장 막내아들 심현기와 며느리를 만나 그 조형물 얘기를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이래서 술을 줄여야 하는데...(어젯밤에도 술꾼 ㅈ과 ㅇ, 이 자들은 자정까지 전화를 해대며 나오라고 끈덕지게 졸라댔다.)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조형물 제막식(사진=김우영 필자)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조형물 제막식(사진=김우영 필자)

이날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조형물 제막식이 해우재에서 열렸다. 고인의 부인인 선정선 여사와 자녀 등 유족과 이재준 수원특례시장, 염태영 전 수원시장을 비롯, 그의 생전에 뜻을 같이 했던 인사들 가운데 초청된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코로나19와 개인 사정으로 몇 년 동안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많아 반가웠다.

제막식을 통해 공개된 심재덕 시장의 동상은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리 생전의 모습과 똑같은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큰 아들 심영찬이 그 옆에 앉아 사진을 찍을 때는 쌍둥이 형제 같이 닮아 일행과 함께 웃었다.

심재덕 시장 동상 옆에 앉은 큰 아들 심영찬. (사진=김우영 필자)
심재덕 시장 동상 옆에 앉은 큰 아들 심영찬. (사진=김우영 필자)

그러나 속으로는 “뭐가 그리 바쁘시다고 겨우 70에 떠나셨나요?”라고 중얼거렸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수확은 후손들이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심재덕이 있음으로 해서 수원은 세계 속의 도시가 됐다. 그가 앞장서 복원한 화성행궁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수원화성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복개될 뻔했던 수원천에는 산책객들로 붐비고, 죽음의 호수였던 서호는 살아나 새들의 낙원이 됐다. 수원은 세계 화장실문화운동의 메카가 됐고 월드컵 경기장에는 프로축구와 국제 경기가 잇따라 열려 축구팬들의 성지가 됐다. 지난 16일엔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과 세비야의 친선전이 열려 수많은 관중이 몰렸다. 어떤 이들은 전날에 와서 화성을 관광하고 통닭거리와 새롭게 뜨고 있는 행궁동 골목에서 하루를 즐기기도 했다.

‘씨앗 뿌린 농부’ 심재덕이 이런 모습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허어 참, 너무 일찍 가셨다.

심재덕은 무소속으로 출마, 22·23대 수원시장을 역임했으며 17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됐다. 2007년엔 세계화장실협회를 창설, 2009년 1월까지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세계의 화장실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뿐만 아니라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자신의 주택을 허물고, 화장실 변기모습을 본 뜬 해우재(解憂齋)를 만들었다. 별세 후 유족들은 이 건물과 땅을 모두 수원시에 기증했다. 해우재는 기네스북에 ‘최초·최대 변기모양 조형물’로 등재됐다.

이날 제막식에서 부인 선정선 여사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과 공중화장실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탈바꿈하게 됐다”면서 “심 시장님과 함께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 덕택이었다”고 말했다.

심재덕 동상과 함께한 부인 선정선 여사. 왼쪽은 심재덕시장이 문화원장을 하던 시절 KBS ‘전설의 고향’ 발가벗고 30리 뛴 양반(‘脫衣走者’)을 감독한 한정희 PD(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위 위원), 오른쪽은 필자다. (사진=김우영 필자)
심재덕 동상과 함께한 부인 선정선 여사(왼쪽 두번째). 왼쪽 첫번째는 심재덕시장이 문화원장을 하던 시절 KBS ‘전설의 고향’ 발가벗고 30리 뛴 양반(‘脫衣走者’)을 감독한 한정희 PD(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위 위원), 오른쪽은 필자다. (사진=김우영 필자)

이재준 수원시장의 말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시장은 해우재 설립 당시 협성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함께 이를 기획했던 인물이다. 이 시장은 “고인의 뜻을 기려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세계적인 명품 특례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16일 자신의 SNS 계정 글에도 “해우재가 고 심재덕 전 시장님의 전원주택이던 시절, 가끔 찾아뵙고 함께 수원의 발전을 꿈꾸고 미래를 그리곤 했었다”며 “예전의 그 자리에서 동상으로나마 뵈니 그리움과 반가움이 밀려 든다”고 회상했다.

동감이다. 동상이긴 하지만 그 옆에 앉아 보니 오래전 그와 함께 했던 화성행궁 복원사업, 수원천 살리기운동, ‘월간 수원사랑’ 발행, 각종 행사 개최,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기념사업, 시정신문 ‘늘푸른 수원 발행, 서호살리기운동 등 무수한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 오늘 같은 날 수원양조장에서 만들었던 약주 ‘용지대월’과 사이다를 섞은 ‘수원천 맑은 술’이나 ‘불휘’ 한 잔 동상 앞에 올려드려야 하는데... 용지대월이나 불휘는 지금 나오지 않으니 며칠 후 행궁동 주민들이 만드는 술 ‘행궁둥이’ 한 병 들고 다시 찾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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