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기행]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던 윤봉길…25세에 지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이뤄진 중국 상해시 방문은 윤봉길 의사의 업적 등 독립운동의 얼을 뒤새겨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난관은 현지에 도착하면서 직면하게 됐습니다.
중국 상해시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해서야 ‘수리중’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청사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현장인 홍구공원에 가서 윤봉길 의사님께 인사드리고 전시물을 살펴보았습니다. 25세. 1908 ~ 1932. 젊은 청년 윤봉길 의사는 김구선생 앞에서 조선과 중국을 위해 일본군을 처단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그 다짐을 적은 종이 한 장은 대한민국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의거전에 찍은 사진의 윤봉길 의사 목과 가슴에 걸려있는 친필의 글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선서문] 나는 참된 정성으로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일본의 장교를 처단하기로 맹세합니다. 대한민국 14년4월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이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정부는 보물 제568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1932년 4월29일 일왕생일 및 일본군 상하이 전승축하 행사가 열리는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결행하기에 앞서 윤봉길 의사가 3일전 자필로 쓴 선서문입니다.
<정의 필승 당대 영웅 윤봉길 의사> 아마도 조선족이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이주한 선대의 자손으로 보이는 80대의 노인이 물을 담은 붓통을 이용하여 보도블럭에 써보인 글씨와 그 내용입니다. 우리 일행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려 명필의 글씨를 선보입니다.
독립운동을 한 분과 그 자식들이 지금도 어렵게 생활한다는 사실에는 마음이 무거운 바인데 아마도 추정컨대 독립운동 애국지사의 자손으로 추정되는 이분의 윤봉길 의사에 대한 글씨쓰기 퍼포먼스에 일행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윤 의사는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생불환)입니다.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조국해방을 위해 한목숨 바칠 것을 각오한 듯 보입니다. 25세의 나이에 조국, 국가, 국민을 위해 나를 희생하겠다는 다짐이 쉬운 일 아니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25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지금의 이 나이에 사회와 국가에 대해 무슨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5평이 안 될 작은 공간에 빼곡하게 모셔진 영정과 사진과 훈장과 여러 가지 소품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종이한장, 쇠붙이 하나가 그 쓰임새에 따라서는 훗날에 국가의 보물이 되고 온 국민이 보고 싶어하는 국보가 된다는 사실에 이르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5월 15일 이봉창, 백정기 의사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해 6월30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에 안장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에 윤봉길 의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필자는 공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작은 모임에 나가 강의하는 기회가 있었고 몇 번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사진을 통해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이야기의 핵심은 25세 젊은 나이의 윤 의사가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사실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거사 3일전에 찍은 사진에 나오는 선서문이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공무원들에게 지금 취급하는 종이 한장이 민원인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중요한 문서임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윤봉길 의사의 역사현장을 다녀왔으니 다음번에 강의 기회가 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윤 의사의 조국사랑에 대해 더더욱 큰 의미를 강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인 윤의사의 유적이 중국내에 잘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갖게 합니다.
이번 여행중 부지런해서 일행들은 친견하지 못한 관우상 관람사실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목선을 타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니 10분정도 여유가 있다고 가이드합니다. 그래서 좀더 상류쪽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관우상을 만났습니다. 드라마 포청전 주인공의 얼굴이 선명한 동상을 보았습니다.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여행중 부지런하면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만날 수 있습니다.
글쓴이
이강석
화성시 옴부즈만 ·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 전 오산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