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었을 때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에 그의 마지막 유언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안 의사의 유언조차 받들지 못하고 있다. 일제는 사형집행 후 시신인도를 거부하고 비밀리에 매장한다.

당시 안 의사의 묘역이 성역화 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유해를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았으며, 매장된 위치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광복 후 고국으로 귀환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은 먼저 독립운동에 헌신한 의·열사들의 유해를 모셔오는 일에 착수했고, 민족분단을 막고자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도 김일성에게 안중근 묘의 발굴을 제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 모시는 일은 숭고한 선열의 후손된 도리로서 유언을 받드는 일이고 또한 김구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다.

몇 해 전 중국 측과 공동으로 ‘한·중안중근의사유해발굴단’을 결성해 뤼순감옥 부근 매장추정지역의 발굴 작업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남북실무접촉자 공동조사단의 뤼순현지조사를 벌인 바 있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난 현지조사가 결정적 고증자료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에 공식문서를 통해 관련 자료를 요청한 적도 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수감생활 등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대거 발견돼 주목받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일본의 외무성 외교 사료관에서 입수한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에는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이 담겨있다. 특히 1910년 3월 26일 안 의사가 중국 여순에 매장돼 있다는 구체적 내용도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당시 일본은 안 의사의 저격이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듯 감옥 내에 임시법정을 설치하고 간수들의 숫자를 증원하는 등 경계를 대폭 강화했던 치밀함이 보인다. 물론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역사 속에 묻혀있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활동기록과 안 의사 사형집행명령문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일본정부가 관련 자료가 없다고 한 것이 허언임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라 하겠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일본정부의 성의가 필요한 때이다. 일본은 최후까지 동양 평화를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과, 유해로나마 고국에 돌아오고 싶어 하신 유지를 존중해,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유해를 찾는데 협조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