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내 놓는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유업계를 지목하며 휘발유 가격을 문제삼자 휘발유의 유통가격 구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2008년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일 때 휘발유 가격이 L당 2천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80달러 정도인데도 1천800원"이라며 휘발유 가격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정유사와 일선 주유소 업계에서는 "휘발유 가격의 절반이 세금인 점과 2008년과 현재의 세금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휘발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할 때 현재 배럴당 94달러 수준인 두바이유 가격과 비슷한 국제유가를 보인 시기는 2008년 9월께.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L당 1천708.47원으로 지난 12월 5주차 1천804.8원보다 96.33원이 더 싸다. 비슷한 국제유가 수준에도 이처럼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와 지금의 세금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휘발유에 붙은 세금은 L당 교통세 472원, 교육세 70.8원, 주행세 127.44원, 부가세 등 807.26원이다.반면 최근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L당 교통세 529원, 교육세 79.35원, 주행세 137.54원, 부가세 등 910원으로 2008년 9월보다 100원 이상 높다.

세금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정부가 2008년 3월 내수진작 등을 위해 유류세를 10% 감세했다가 이듬해 원상태로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2008년 당시 1%였던 원유 수입 관세가 최근에는 3%가 됐기 때문에 L당 휘발유 공급 가격도 약 11원이 더 올랐다고 정유사들은 분석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같은 세금뿐만이 아니다. 2008년 9월보다 환율도 달러 당 120원이 상승했으며 인건비도 덩달아 올라 휘발유 가격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정유사 가격 통제를 통한 정부의 인위적인 휘발유 가격 인하 시도는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정유사들은 지난해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영업이익률은 1%대로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 비중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아 

L당 1천900원 정부 왜곡된 유류세 체계 적정수준 시정 지적도최근 정부와 정유업계 간에 '기름값(휘발유값)'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우리나라는 석유제품 중 보통휘발유 및 자동차용 LPG(액화석유가스)에 붙는 세금 비중이 주요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행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정유업계나 주유소들의 가격 인하 노력 등 자구책도 중요하겠지만, 정부도 왜곡된 유류세 체계를 적정수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 서비스망인 '오피넷'에 공개된 'OECD 국가별 석유제품 소비자 판매가격 및 세금비중'(이하 2010년 기준, 미국은 세금 부분 확인이 안돼 비교대상서 제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고급휘발유가 L당 1천909.39원으로, 22개 비교국가 중 15위에 그친 데 반해 보통휘발유는 L당 1천709.89원으로 4개 비교국가 중 일본(L당 1천754.10원)에 이어 2번째로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보통휘발유 값은 포르투갈(L당 1천162.12원), 뉴질랜드(〃1천490.72원) 순이었다.

하지만, 고급휘발유의 세금비중은 한국이 49.88%로 22개 비교국가 중 20위에 그친 반면, 보통휘발유의 세금비중은 한국이 52.55%로 4개 비교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보통휘발유의 세금비중은 한국에 이어 일본(45.18%), 뉴질랜드(43.46%), 캐나다(33.03%) 순으로 높았다. 따라서 보통휘발유의 경우 비교가능한 국가가 4개국에 불과해 34개 OECD 회원국에 대한 절대비교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한국은 보통휘발유에 붙는 과도한 유류세를 낮출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옥탄가 94 이상인 제품을 고급휘발유로, 옥탄가 92 이상 94 미만인 제품을 보통휘발유로 각각 구분하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는 옥탄가가 95인 제품도 우리나라의 보통휘발유처럼 흔히 팔리기 때문에 국가별 보통휘발유 가격비교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피넷의 가격비교표는 OECD 산하 IEA(국제에너지기구)가 분기별로 조사발표하는 국가별 석유제품 가격과, 공인된 사이트의 가격기준을 토대로 석유공사가 우리나라 기준으로 재가공해 분석한 결과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은 자동차경유의 소비자가격이 L당 1천502.01원으로 23개국 중 20위였고, 실내등유는 L당 1천71.58원으로 22개국 중 15위, 자동차용 LPG는 L당 952.36원으로 15개국 중 9위를 차지했다.

석유제품별 세금비중을 보면 한국은 자동차경유가 43.59%로 23개국 중 20위, 실내등유는 19.25%로 21개국 중 19위 등 각각 하위권인 데 반해 자동차용 LPG는 32.34%로 15개국 중 5위로 상대적으로 세금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 정유사는 비싼 기름값 합리화 말아야

국내 휘발유값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고 가격 인상 속도도 빠를 것이라는 국민의 ‘감’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정부 조사 결과 국내 휘발유 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내 조사된 22개국 평균보다 ℓ당 125원(1월 2, 3주 평균) 이상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휘발유의 국제가격 비교 자료 미비로 인해 고급 휘발유를 기준으로 한 조사라는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국내 휘발유값이 비싸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나마 확인된 것이다.

국내 휘발유값 상승속도(2008년 12월 이후 지난달까지) 역시 고급(ℓ당 357원), 일반(373원) 할 것 없이 다른 나라 평균(고급 260원, 일반 330원)보다 높았다. 국내 정유사가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기름값을 재빨리 올렸다가 국제유가가 내릴 때는 찔끔찔끔 내린다는 비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었음도 일부 증명된 셈이다. 

이에 대해 정유사는 국내외 기름값의 가격 격차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특정 시점의 가격 차를 가지고 국내 기름값이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오른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내 기름값 상승폭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못한다. 현재 국민은 비싼 기름값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최근 국내 정유사의 이익은 엄청나게 늘었다.

정유사의 좋은 실적은 경영을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나라보다 비싼 기름값에도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의 시각이다. 정유사는 국민의 이런 불만을 해소해야 한다.

엄청나게 늘었다는 이익을 조금 양보한다는 자세만 가져도 이런 불만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비싼 기름값을 합리화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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