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7주년 에세이] 드러난 뿌리, 놓지 않은 땅

> 수원화성 서이치 성벽 곁에서, 창간 37주년에 부쳐

- 매체: 수원일보 — 수원·화성·용인 경기남부 뉴스 · 1989년 창간 37년, 경기도 제1호 인터넷신문(등록번호 경기 아 00001)
- 기자: 수원일보
- 발행: 2026-09-30T01:00:02+09:00 · 수정: 2026-09-30T01:00:02+09:00
- 섹션: 오피니언 > 사설
- 원문(캐노니컬): https://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L260929172012c06f
- 인용 표기: 수원일보, “[창간 37주년 에세이] 드러난 뿌리, 놓지 않은 땅”, 2026-09-30, https://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L260929172012c0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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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원화성 서이치 성벽 아래 소나무. 드러난 뿌리가 비탈을 붙들고 있다.)

(사진: 김기수 기자=수원 화성 서이치 성벽 아래 소나무. 드러난 뿌리가 비탈을 붙들고 있다.)

수원화성 서이치 아래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줄기는 거북 등처럼 갈라졌고, 뿌리는 흙 위로 드러나 비탈을 따라 사방으로 뻗었다. 뒤로는 성돌이 층층이 쌓였다. 줄기는 그 성벽을 등진 채 위로 솟았다.

뿌리가 드러났다는 것은 발밑의 흙을 잃었다는 뜻이다. 동시에 아직 땅을 붙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잃은 것과 쥐고 있는 것이 한 몸으로 엉켜 있다.

서이치는 1796년 쌓은 수원화성의 치성 열 곳 가운데 하나다. 경사가 급한 자리라 규모가 작고, 아래쪽에 장방형 석재를 깔았다. 치(雉)라는 이름은 꿩이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는 습성에서 왔다. 드러나지 않게 서서 바깥을 살피는 자리다.

지역신문이 선 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 안에 몸을 두고 도시를 살피는 자리다.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다만 성벽에서 한 뼘 앞으로 나와 있다.

수원일보는 1989년 9월 30일 창간했다. 오늘로 서른일곱 해가 됐다.

그동안 이 신문이 기록한 것은 대부분 이 도시의 일이었다. 시청과 도청, 학교 운동장과 재개발 현장, 시장 골목과 민원실. 서울에서 내려다보면 잘 보이지 않는 자리들이다. 큰 사건도 있었고, 누구도 기사로 쓰지 않았을 작은 일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 자리의 흙은 여러 번 깎였다.

종이에 찍어 돌리던 신문이 인터넷으로 옮겨 가던 때, 수원일보는 먼저 건넜다. 2001년 지역 언론에서 처음으로 시민기자제를 열었고, 2005년에는 경기도 인터넷신문 첫 등록번호인 경기아00001을 받았다. 2008년 경인지역에서 가장 먼저 포털에 기사를 보냈고, 2014년에는 전국 지역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했다.

그때마다 발밑이 먼저 무너졌다. 독자는 포털에서 기사를 만났고, 그곳에서는 매체 이름보다 제목 한 줄이 먼저 읽혔다. 앞서 걷는다는 것은 대개 그런 일이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자료를 받아 금세 기사의 형태를 갖춘 문장을 내놓는다. 어제 사람의 일이던 것이 오늘은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언론이 오래 기대어온 흙, 이른바 '우리만 아는 정보'라는 지반이 다시 깎여 나가고 있다.

이번 비탈도 피하지 않으려 한다.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건너오던 때가 그랬듯, 도구가 바뀌면 먼저 써보고 먼저 넘어지는 쪽에 서겠다.

그러면서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한다. 기계가 내놓는 문장은 매끄럽다. 다만 그 매끄러움이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 현장에 머무는 시간이다. 뿌리 밑에 흙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멀리서 보이지 않는다. 가서 서 있어야 보인다.

한 번 더 묻는 일도 그렇다. 자료가 말하지 않은 대목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틀렸을 때 틀렸다고 쓰는 일이다. 지난 기사를 다시 꺼내 고치는 문장 앞에서 쓰는 사람은 한참 머뭇거린다. 빠른 기계가 생겼다 하여 대신 맡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사진: 굵은 가지가 성벽 위로 몸을 기울였다. 뿌리는 비탈을 움켜쥐고, 가지는 담 너머를 향한다.)

(사진: 김기수 기자= 굵은 가지가 성벽 위로 몸을 기울였다. 뿌리는 비탈을 움켜쥐고, 가지는 담 너머를 향한다.)

서른일곱 해를 신문 혼자 버틴 것은 아니다. 기사를 읽어준 독자가 있었고, 틀렸다고 알려준 독자도 있었다. 뿌리가 붙들고 있는 것은 결국 그 땅이다.

굵은 가지 하나가 성벽 위로 몸을 기울였다. 뿌리는 비탈을 움켜쥐고, 가지는 담 너머를 향한다. 드러난 채로, 붙든 채로. 다시 한 해를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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