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홍익인간’ 정신 되새겨 갈등 넘어 포용의 사회로

> 진영의 벽을 낮추고 대화와 타협으로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해야

- 매체: 수원일보 — 수원·화성·용인 경기남부 뉴스 · 1989년 창간 37년, 경기도 제1호 인터넷신문(등록번호 경기 아 00001)
- 기자: 수원일보
- 발행: 2026-10-02T21:20:44+09:00 · 수정: 2026-10-02T21:20:44+09:00
- 섹션: 오피니언 > 사설
- 원문(캐노니컬): https://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L261002205732a47d
- 인용 표기: 수원일보, “[사설] ‘홍익인간’ 정신 되새겨 갈등 넘어 포용의 사회로”, 2026-10-02, https://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L261002205732a47d

---

[사설]

**‘홍익인간’ 정신 되새겨 갈등 넘어 포용의 사회로**

(사진: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단 내 단군성전에서 단기 4350년 어천절 대제전이 열리고 있다. 3월15일은 단군이 세사를 모두 마치고 승천한 날이며, 이 날을 어천절이라 칭한다. 현정회는 이곳 단군성전에서 매년 어천절 제례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행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모든 인간의 평화와 번영을 바랐던 단군의 홍익인)

(사진: / 뉴시스 자료 사진)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단군의 건국을 기리는 이날은 단순히 오래된 역사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왔고,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지 돌아보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갈등과 대립이 일상이 된 오늘, 개천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다.

단군신화에 담긴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지향해온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처럼 나와 내 집단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자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다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편’의 벽이 갈등을 키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의 잘못에는 날을 세우면서도 자기편의 잘못에는 눈을 감는 모습도 흔하다. 공동체보다 진영의 논리가 앞서는 순간 갈등은 쉽게 증폭된다.

정치권의 책임이 큰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정치는 갈등을 풀기는커녕 갈등의 또 다른 원인이 된다. 편 가르기와 적대의 언어가 정치의 일상적인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치권만 탓해서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정치의 모습은 시민사회의 모습과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인의 거친 말에 환호하고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정치 역시 그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내 편이면 무엇이든 감싸고 상대편이면 무엇이든 비난하는 태도부터 돌아봐야 한다.

**정치만 탓해서는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

변화는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만큼 상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내 편의 잘못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개천절의 의미도 오늘의 현실에서 새롭게 읽을 수 있다. ‘개천(開天)’을 단순히 하늘을 연다는 뜻으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닫힌 마음을 열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공간을 넓히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의 질서가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제도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치권은 갈등을 이용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시민사회 역시 정치적 승패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내가 지지하는 쪽의 승리가 곧 공동체의 승리는 아니다. 상대를 꺾는 것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있다.

‘홍익인간’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도 거창한 구호로는 부족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내 편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으며, 공동체 전체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작은 배려와 양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태도가 쌓여야 사회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하며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고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개천절을 맞아 우리 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자. ‘나의 세상’과 ‘우리 편’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볼 때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오래된 정신은 결국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것, 내 편의 잘못도 돌아보는 것, 그리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다.

하늘은 혼자 여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열 때 공동체의 하늘도 열린다. 개천절이 그 단순하지만 오래된 진실을 다시 생각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
매체: 윤리강령·열린보도원칙·AI 활용 준칙 공개(https://www.suwonilbo.kr/policy.html) · 취재편집국 기자 프로필(https://www.suwonilbo.kr/reporter.html)
최신 기사: https://www.suwonilbo.kr/rss.xml · 사이트 안내: https://www.suwonilbo.kr/llms.txt · 이 기사 JSON: https://www.suwonilbo.kr/api/article?id=L261002205732a47d
모든 기사 URL은 `?format=md` 를 붙이면 이 마크다운 형식으로 제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