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의 수원현미경(1)] 우연한 만남일지라도 평생지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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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의 수원현미경(1)] 우연한 만남일지라도 평생지기가 될 수 있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0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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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12월 10일 경수산업도록건설공사현장.(사진=김충영)
79년 12월 10일 경수산업도로 건설공사 현장.(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김충영의 수원현미경’은 ‘아는 듯 몰랐던 수원’ 이야기입니다. 김충영은 소년시절 수원에 정착해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겪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수원시청의 도시계획 업무를 담당한 이래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온 전문가이자 수원에 애착이 강한 ‘수원통’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말단으로 공직에 발을 디뎌 구청장에 이르기까지 수원시에 근무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화성과 수원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단체 (사)화성연구회 창립을 이끈 김충영 박사의 ‘수원 현미경’은 또 다른 관점의 매우 중요한 수원사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화성역 앞 고교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으로 공직의 길을 걷다
                
1976년9월 군에 입대해서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산에 있던 육군측지부대에 배치돼 부대장 당번병으로 복무했다. 제대가 2개월여가 남았을 때 부대장이 제대를 하게 되자 나에게 말년 휴가가 주어졌다.

어느날 팔달문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도중 수여선 화성역(현재 인계동 2001아울렛)앞에서 고등학교 담임이었던 염재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의 근황과 제대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아직 계획이 없다고 하니 공무원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지 않아도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려고 한다고 하니 참으로 잘됐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1979년 당시는 중동 건설 붐이 절정이어서 토목, 건축 분야 건설기술자들이 임금을 많이 주는 중동으로 가는 바람에 기술직 공무원 지원자가 부족했다. 이에 수원시에서 기술직공무원을 특채(특별경쟁채용)를 통해 충원하기로 했고 당시 개교9년이 돼 졸업생을 배출한 지 6년이 된 수원공고에 수원시가 우수졸업생 추천 요청 공문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결국 1979년 8월, 학교 추천으로 특채를 통해 수원시에 첫 발령을 받았다. 화성역 앞에서 담임선생님과의 우연한 만남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돼 나로 하여금 평생을 공직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됐다.

처음 만난 업무는 경수산업도로와 화성복원사업

첫 발령지는 수원시 건설국 도시과 도시계획계였다. 1979년 당시 수원시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은 경수산업도로를 건설하는 사업과 화성복원사업이었는데 이 사업을 도시계획계에서 담당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국도1호선 중 서울~수원구간은 서울에서 시작해 1973년까지 한일합섬(현 한일타운 사거리)까지 공사를 경기도가 맡아서 하게 됐다. 

수원의 장안문과 팔달문을 경유하는 국도1호선(조선시대에는 제주대로)은 당시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77년부터 한일합섬에서 동수원사거리 구간에 대한 공사를 추진하게 된다.

당시 도시계획계에는 계장을 포함, 4명이 근무하다보니 일손이 부족했다. 발령받은지 얼마 안된 신참인 나에게 주어진 일은 경수산업도로 구간 수원천에 건설하는 영연교 건설현장에 가서 철근을 설계도대로 시공하는지를 감독하는 일이었다.

1979년 수인산업도로 영연교앞 건설현장.(사진=이용창 사진작가)
1979년 수인산업도로 영연교앞 건설현장.(사진=이용창 사진작가)

또 하나의 일은 1975년부터 시작된 수원성(화성)복원사업이었다. 화성복원사업 역시 이 사업은 경기도가 주관해서 추진했다. 수원시에서는 성곽복원공사에 편입되는 건물 및 토지에 대한 보상을 담당했고 성곽주변의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맡았다.

장안공원 조성사업은 박모 차석이 담당했는데 산업도로 현장감독을 담당하고 있어 일손이 달리자 감독을 보조하는 일이 내게 맡겨졌다. 화성복원사업이 마무리돼 감에 따라 수원성(화성)복원 준공식 날짜가 1979년10월27일로 결정됐다. 이 행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경기도와 수원시는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다. 

1979년 조성 직후의 장안공원.(사진=김충영 박사)
1979년 조성 직후의 장안공원.(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준공식은 장안공원 수원성복원정화비 제막식으로 계획됐는데 수원성복원정화비의 휘호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를 새겨서 만들었다. 

1979년10월26일 늦도록 준공식장 주변 정리작업을 마무리 짓고 귀가했다.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호방조제사업 준공사에 참석하고 다음날인 27일에는 화성복원준공식이 있는 날이다.

드디어 27일이 밝았다.  아침에 방송을 들으니 정규방송을 하지 않고 대신 무거운 음악만 나왔다. 이윽고 오전 9시쯤 국가원수가 '유고'라는 방송이 나왔다. 결국 10월27일에 열리려던 수원(화성)성곽복원공사 준공식은 연기됐고 한달 뒤인 11월29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참석한 가운데 수원(화성)성곽복원공사 준공식이 개최됐다.  

우연히 만난 도시계획이 나의 전공이 됐다

1979년 8월 수원시 도시계획계 발령을 받고 8개월이 지난 1980년 3월 수원시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름하여 공금횡령, 뇌물수수, 뇌물공여 등 많은 죄목으로 10여명의 공무원이 불명예 처분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수원시에 지은 맨션아파트 1호인 파장동 삼익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발생했다. 1979년 당시 수도관은 주철관만 사용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무렵 플라스틱 수도관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수도과 급수계장으로 근무하던 모씨가 수도관연결공사를 해주는 과정에서 주철관 공사비를 받고 실제시공은 프라스틱관으로 공사를 한 뒤 남는 돈을 ‘인마이 포켓’한 것이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화서동에 땅을 매입해서 토지형질변경 허가를 득하여 대지를 조성한 후 비싸게 매각을 하는 땅 장사를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토지형질변경허가를 해준 담당공무원과 상사들에게 돈을 나눠줌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백세현 시장에게 책임을 물었고 백시장은 지방인 울산시장으로 쫓겨 가게 됐다. 후임으로 경기도 내무국장을 하던 허섭 씨가 수원시장으로 내정됐다. 내무국장은 경기도와 시.군 인사권을 가진 자리였다. 이 시절 시군 공무원 인사를 경기도지사가 직권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시.군에서는 인사를 하기 전 반드시 경기도지사의 승인을 얻어야만 했다. 

허섭 내무국장은 수원시장으로 부임하기 전 수원시의 문제 공무원을 정리한 상태에서 수원시장을 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일로 기술직 등 50여명이 경기도내 각 시.군으로 2~3명씩 쫓겨 가서 수원시 기술직과 대부분이 1개계에 한두 명만 남게 되는 대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도시계획계 역시 함모 계장은 여주군으로, 박모 차석은 시흥군으로, 3석 남모씨는 안양시로 전출을 가게 돼 도시계획계에는 경력 1년도 안된 필자만 남게 됐다. 이 사건으로 필자는 인구 25만 명의 수원시 도시계획을 인수받게 됐다. 이 일로 수원시 도시계획과 인연이 돼 20여년을 수원시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김충영 박사는>
- 1955 화성시 우정읍 출생
- 1974 수원공고 졸업 
- 1989 경기대학교 졸업
- 2004 가천대학교 환경대학원 졸업 (석사)
- 2010 가천대학교 환경대학원 졸업 (도시계획박사)

*경력
-1998.10 수원시 도시계획과장
- 2005.11 화성사업소장
- 2009. 건설교통국장
- 2010.10 팔달구청장
- 2012.12 환경국장
- 2013. 3 수원시 청소년재단 이사장

*활동사항
- 2014. 3. 사회복지시설 바다의별 운영위원
- 2016. 3. 학교법인 광인학원(수원공업고)감사
- 2017.1. (사)화성연구회 이사장

*저서 (논문)
- 2003. 8. 관광활성화전략으로서의 수원화성정비방안 연구논문 (석사)
- 2010. 2. 수원화성옛길의 변화특성분석및 보전방안 연구 논문 (박사)
- 2011.5.수원지방 산맥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