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의 수원현미경(3)] 심재덕 시장의 이루지 못한 꿈 ‘세계적 야외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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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의 수원현미경(3)] 심재덕 시장의 이루지 못한 꿈 ‘세계적 야외공연장’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0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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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앞 화성 성곽 연결전 모습. (사진=필자 김충영)
창룡문앞 화성 성곽 연결전 모습. (사진=필자 김충영)

민선 1기로 당선된 심재덕 수원시장은 ‘문화시장’을 기치로 내세웠다. 심 시장이 화성행궁복원 추진과 함께 의욕을 보인 사업은 창룡문사거리(동문사거리)에 지하차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수원시 도로과장인 나에게 이 사업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창룡문앞 다목적광장 조감도.(자료=수원시 화성주변 정비계획보고서)
창룡문앞 다목적광장 조감도.(자료=수원시 화성주변 정비계획보고서)

이 사업은 2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동문사거리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동서방향인 행궁 쪽에서 성남방향으로 지하차도를 만들면 교통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연무대와 창룡문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지하차도로 건설하면 그 상부를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심재덕 시장의 숨은 뜻은 연무대와 창룡문 앞을 연결해 넓은 마당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창룡문 앞에 세계적인 야외공연장을 꾸며보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관련 전문가들과 지하차도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동서방향 지하차도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지하차도를 만들 경우 4차선(편도2차선)으로 해야 하는데 도로가 협소해 25m 도로를 35m로 확장해야 하는 막대한 예산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동문사거리에 지하차도를 만든다면 동서방향이 아니고 남북방향, 그러니까 경수산업도로에 만들어야 했다.

검토 끝에 내린 결론은 동서방향에 지하도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심 시장은 대안이 없느냐고 물었다. 당시 화성은 일제 강점기부터 도로를 내면서 성곽이 끊어진 10여 곳을 연차적으로 연결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부분에 박스(BOX)를 만들어 연결하고 그 부분이 높으므로 도로를 2m 정도 낮추고 성곽연결박스를 행궁방향으로 200~300m를 연결하면 상부에 광장이 조성된다는 안을 설명하니 그렇게 해보라고 승낙했다. 당시 성곽유지관리는 화성관리사무소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창룡문 성곽연결사업은 도로과에서 추진하게 됐다.
 
이후 폭 25m, 길이 250m의 통로박스(BOX)를 설계해 1차로 폭 25m, 길이 10m 성곽연결공사를 마무리 짓게 됐다.

이 사업을 마치고 나는 1998년 10월 전공에 맞게 도시계획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어 심 시장은 나에게 화성주변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정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화성주변 정비계획 수립용역이다. 이 계획에는 외부에 주차장을 두고 성안으로는 걸어서 들어올 수 있는 구상이 들어 있었다. 주 통로는 창룡문을 선택했다. 이는 외부에서 올 때는 주로 동수원IC를 이용하기가 좋고 경수산업도로(현 1번국도)변에 접해 있어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창룡문 주변에는 2가지 계획이 수립됐다. 창룡문 밖에는 주차장 건설이라고 했으나 정확한 표현은 ‘불량환경 정비’를 곁들인 주차장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창룡문 밖은 6.25때부터 형성된 마을로, 성벽에서 20m까지는 1975~79년에 화성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비를 했다. 하지만 성벽 20m 넘어서는 그때 까지도 100여 호가 되는 마을에 화장실이 없어 주변 학교 화장실 등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어서 정비가 시급했다.

이에 창룡문 밖 마을에 대한 정비 사업을 진행, 주차장과 관광안내소를 제외하고는 공원을 조성했다. 여기에는 후일 화성을 이용할 수 있는 주진입로 역할에 대비해 임시로 공원을 만든 것이었다.

이와 병행해 창룡문 안쪽에는 다목적 광장조성사업(공연장)에 대한 설계용역을 진행했다. 이 시기는 2001년으로, 민선 3기 시장선거가 1년여 남은 시점이었다. 심 시장은 이 때 정치적 모함으로 인해 영어(囹圄)의 몸이 돼 큰 고초를 겪고 있었다.

이어 2002년 4월에 선거가 치러졌는데, 이 후유증으로 심재덕 시장은 낙선하고 김용서 시장이 당선됐다.

김용서 시장 인수위원회는 이 사업을 관심있게 챙기는 가운데 창룡문 안쪽에 다목적광장을 만드는 것이 투자비에 비해 효과가 적다고 결론을 냈다.
 
설계가 마무리 단계였지만 부랴부랴 수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마무리를 짓게 됐다.

창룡문앞 성곽이 연결된 현재의 모습.(사진=필자 김충영)
창룡문앞 성곽이 연결된 현재의 모습.(사진=필자 김충영)

나는 가끔 창룡문을 통해 성안으로 걸어 들어올 때면 환상에 빠지곤 한다.

왼쪽에는 연무대, 이어 동북공심돈(소라각)이 모서리를 지키고 오른쪽으로는 동북노대와 창룡문이 버티고 서 있다. 그 사이를 성곽이 병풍을 친 아늑한 객석에서 세계적인 공연을 감상하는 꿈을 꾼다.

과연 심재덕의 꿈은 영원히 사라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