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원시의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관련 글을 쓰기 위함이지만 산책을 겸하고 있어 걸어서 뚜벅뚜벅 수원시를 누빈다. 차를 타지 않는 이유가 있다. 현역에서 은퇴를 했기에 바쁘지 않다.

걸으면 운동도 된다.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면 그동안 눈 여겨 보지 않았던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몇 십 년 만에 가 본 어떤 곳은 상전벽해(桑田碧海), 풍경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있어 다른 도시에 여행 온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며칠 전엔 매향동 느티나무와 매탄동 느티나무를 찾아갔다. 수원문화원 최중영 사무국장과 함께 우만동 현대 아파트 내에 있었다는 오래된 느티나무도 찾아보았으나 끝내 발견할 수 없어 아쉽게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아마도 고사했거나 아파트 건축 과정에서 베어졌으리라.

최국장은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곳에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그루가 불에 타서 죽었다. 어떤 사람들이 새를 잡는다고 나무 구멍에 불을 놓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진화하려 했지만 며칠 동안 연기를 내며 탔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주던 당산나무가 사라지면 큰일 난다고 마을 무당에게 회생굿을 부탁했다. 돈이 귀했던 때라 집집마다 쌀 두되씩을 걷어 굿 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굿이 효과가 있었는지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났지만 몇 년 후 나무는 죽고 말았다.

그래서 나머지 한그루를 찾으러 나선 것이었는데 그마저 자취가 없어졌으니 허전했다.

우만동에서 나와 영통구 매탄동 866-25번지 산드래미 삼성전자 입구 느티나무를 찾아 갔다. 고사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왜 고사했을까? 십 몇 년 전만 해도 청청하던 그 나무가...

고사한 매탄동 느티나무. (사진=필자 김우영)
고사한 매탄동 느티나무. (사진=필자 김우영)

사실 이 나무가 고사하기 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2018년 6월 한 지역 언론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수원시 매탄동에 소재한 수령 270년 된 느티나무를 찾아가 보니,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지고 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이 나무는 지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지만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모습이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J씨(60)는 “잎도 풍성하고 줄기도 많은 나무였는데 최근 몇 년간 주변 공사한다고 굵은 뿌리를 잘라낸 탓에 이젠 죽은 나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미 당시에 “이젠 죽은 나무나 다름없다”는 한 주민의 말에서 이 나무의 종명(終命)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늘이 부여한 천명(天命)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고종명(考終命)이 아니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이듬해인 2019년엔 더 안 좋은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시는 지난해 6월 강풍에 부러진 500년 수령의 단오어린이공원 느티나무 사건 이후 기상재해에 위험이 높은 보호수 10그루에 대해 지지대 설치 등 보호공사에 나섰다. 해당 느티나무 역시 나뭇가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까 봐 잘라내고 천으로 나무기둥을 감아뒀다. 그러나 조치를 취한 지 1여년이 지나도 해당 보호수는 5월이 된 현재까지 새싹 하나 틔우지 못한 상태다. 시 관계자 역시 “이달 말 나무병원의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볼 예정이지만 사실상 고사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2019년엔 새싹 하나 틔우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현장에서 본 나무의 모습은 처참했다. 껍질은 모두 벗겨지고 가지 윗부분은 모두 잘려 괴이하기까지 했다.

지표면에 드러난 뿌리들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살려달라는 듯, 뼈만 남은 손과 같은 형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지상의 흙을 끝까지 움켜쥐고 있었다. 죽어가던 나무의 신음이 들리는 듯 했다.

고사한 느티나무 뿌리. 살려달라며 끝까지 흙을 움켜쥐고 있다.(사진=필자 김우영)
고사한 느티나무 뿌리. 살려달라며 끝까지 흙을 움켜쥐고 있다.(사진=필자 김우영)
느티나무는 사방의 뿌리가 모두 잘려나가고 가로 막혀 굶어죽고 말았다.(사진=필자 김우영)
느티나무는 사방의 뿌리가 모두 잘려나가고 가로 막혀 굶어죽고 말았다.(사진=필자 김우영)

도로개설과 건물 건축으로 3면이 수직절벽이고 한 면은 시멘트 건물에 막혀 버린 불쌍한 고목은 뿌리를 뻗을 곳조차 없었다. 수분 없는 작은 화분에 갇힌 거목과 같았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영양이 부족해 굶어죽고 만 것이다.

수원시에서 나무를 살리려고 한 흔적도 보이긴 했다.

나무병원과 산림환경연구소에 해당 보호수 검진을 의뢰하고, 임시방편으로 흙 속의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도록 땅바닥 위에 볏짚을 깔았다. 또 보호수 옆에 1천리터짜리 물탱크를 설치, 물을 공급했으며, 나무에 영양주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자주 꼼꼼하게 오래된 나무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며 상태를 살펴주길 바란다. 나무는 그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지켜본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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