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3월 5일의 추억

많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는 법

   
▲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한국 현대사 이야기를 한번 더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3월 5일 밤 9시 9분.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로, 해방된 뒤에는 통일운동가로 터벅터벅 가시밭길 인생을 걸어온 신창균 전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상임의장이 9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 세기의 궤적을 남긴 인생 내력의 소유자가 마침내 세상과 이별했다는 부음(訃音) 기사는 필자로 하여금 깊은 상념에 젖게 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거니와, 전말은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2년 2월 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대표적인 친일파 708명의 이름을 발표했다. 그 명단에는 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족벌사주의 조상인 김성수와 방응모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인 3월 5일 조선일보는 창간 82주년 기념호를 발간하며 방응모를 '민족지사'로 칭송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한 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방응모가 한독당(한국독립당) 재정부장을 지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시절부터 이끌던 한독당의 재정부장을 방응모가 맡았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일까.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일에 심취해 있던 필자가 한 달에 걸쳐 취재한 결과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설'은 사실 1980년 조선일보가 방응모 평전을 정리하면서 회사 내부 인사의 '주관적 증언'을 유일한 근거로 삼아 만들어낸 '가설(假說)'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그것을 반복해 보도하면서 어느덧 '정설(定說)'로 굳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한독당 전문가인 노경채 수원대 사학과 교수를 통해 통일운동가 신창균 선생이 '진짜 한독당 재정부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신창균 선생이 95세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그 해 3월 13일 필자와 약속한 장소인 서울YMCA 1층 커피숍에 나타났다. 잠시 후 그가 토해낸 다음과 같은 증언은 가공할 언론의 위력을 이용해 역사를 날조하려던 한 신문사의 검은 음모를 무너뜨렸다.

"방응모가 재정부장을 맡았다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947년 이후 내가 줄곧 재정부장과 재정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인데, 감히 누가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가짜 독립유공자'는 많이 보아왔지만 '가짜 한독당 재정부장'은 처음 듣는다. 근거도 없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의 왜곡이다. 조선일보는 더 이상 역사 날조와 왜곡에 김구 선생을 끌어들이지 말라."

그 이후로 조선일보는 '방응모 한독당 재정부장' 기사를 더 이상 보도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신창균 선생이 당시 생존해 있지 않았다면 조선일보가 날조한 가설은 정설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신 선생이 타계한 지난 3월 5일 발간된 창간 85주년 기념호 사설에 조선일보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적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