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동화 속의 명 재판관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아무리 사건이 복잡해도 진실과 거짓을 정확히 밝혀내어 어떤 사기꾼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재판관이 있다고 합니다."

알제리의 임금 바우아까스는 신하들로부터 한 재판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했던 바우아까스는 그 소문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곧바로 말을 탄 장사꾼 복장을 하고 그 재판관이 산다는 고장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부랑자 한 명이 광장까지 말을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바우아까스는 동정심을 발휘해 그를 말에 태워주었다.

그러나 광장에 도착했건만 부랑자는 도통 말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시치미를 뚝 뗀 채 자신이 주인이므로 순순히 말을 내놓지 않으면 재판관에게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재판관을 찾아가라고 외쳤다. 바우아까스와 부랑자는 군중에게 둘러싸인 채 법정에 도착했다.

법정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바우아까스와 부랑자는 서로 자신이 말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사람의 주장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재판관이 "말은 여기 놔두고 내일 다시 오라"고 말했다.

이튿날 재판관은 두 사람을 마구간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에는 스무 마리의 말이 매여져 있었다. 재판관은 그 중에서 각자 자신의 말을 골라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바우아까스는 물론이고 부랑자도 정확하게 말을 짚어내는 것이 아닌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군중 속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재판관이 위기에 몰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재판관은 바우아까스의 승소(勝訴)를 선고했다.

 말을 돌려 받은 바우아까스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판결을 끝내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재판관을 쫓아갔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재판관이 조용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마구간으로 데리고 간 것은 말을 제대로 골라내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소. 도리어 나는 그 말이 당신들 가운데 누구를 주인으로 반길 것인가에 주목했다오. 당신이 말에게 가까이 가자 말은 당신을 향해 머리를 들고 목을 내밀었소. 그래서 나는 당신이 진짜 말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요."

프랑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동화의 제목은 '훌륭한 재판관'이다. 상식과 원칙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진실과 거짓을 정확히 밝혀내는 명 재판관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언제나 통쾌하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이 프랑스 '동화'와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이철우 전 의원에게 내려진 선거법 판결은, 현장을 수 차례나 방문해 이 사건의 진상을 입체적으로 추적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탁상 재판'의 전형, 아니 차라리 '블랙 코미디'로까지 읽혀진다.

그것은 마치 말을 골라낼 줄 아는 정도의 얕은 기술만 믿고 '목소리 큰 부랑자'를 말의 주인이라고 오심(誤審)한 것에 감히 비유할 수 있다.

자사의 사주가 저질렀던 탈세, 횡령, 배임 등 범죄행각이 객관적 사실로 드러났을 때는 "권력의 시녀인 검찰과 사법부를 동원한 언론탄압" 운운하며 앙앙불락 했던 보수신문들이, 이번에는 진상을 가리려는 어떤 노력도 시도하지 않은 채 사법부의 '거룩한 판결'에 기대어 '무조건 복종'을 소리높여 다그치는 모양새도 '블랙 코미디'이기는 마찬가지다.

동화 속의 명 재판관을 현실에서도 보고 싶은 것은 여전히 지나친 욕심일까.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