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정약전과 이시하라

여의도 칼럼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중견 소설가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은 정약전의 유배 이야기를 극화한 장편소설이다. 최근 발간된 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극형을 면하기 위해 종교적 신념을 부인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배를 살기 위해 거친 파도를 가로질러 위태롭게 흑산도로 향하는 돛단배 위에서 정약전이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던 것은 구토만이 아니었다. 닭이 울기 전 로마 병정 앞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떠올리며 그는 자책과 자성의 눈물을 삼켰다.

요즘 주변에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바꾸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이윤성 의원은 작년 10월 18일에 있었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관제데모 논란으로 코너에 몰려 있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했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나가라"고 주문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들도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시하라가 직접 주도해 작성한 수도이전 반대 포스터를 몇 개씩이나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한때 구세주(救世主) 대접을 받았던 이시하라는 6개월만에 유다(?) 취급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시하라가 지난 4월 3일 후지TV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강력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국내에서 자신의 인기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정치가로서는 3류 수법"이라고 망언을 늘어놓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오죽하면 이명박 시장마저 곧바로 "우리 정치가 3류라면 이시하라의 정치는 4류·5류이다. 누구도 우리 정치를 비판할 수 있지만 일본 극우세력은 자격이 없다"라고 비판했겠는가.

물론 역사왜곡과 수도이전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시하라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안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1999년 도쿄도지사 당선으로 정계에 복귀한 직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일본 우경화의 물꼬를 텄던 이시하라는 일본 '수구 꼴통'의 거장(?)답게 수많은 망언을 쏟아냈다. "한일합병은 조선인이 자의로 선택한 것" "난징대학살은 중국인들이 지어낸 거짓말" "북한 따위가 허튼 짓을 하면 한 방에 궤멸시킬 것" "될 수만 있다면 히틀러가 되고 싶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쓰레기 재활용 시대라고는 하지만 히틀러가 되고 싶다는 인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없다. 그것은 히틀러가 이룩해낸 경제성장이 독일의 자랑거리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내의 정치투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급박하고 중요하다 해도 이시하라 같은 인물을 전범으로 인용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최소한 전범(戰犯)과 전범(典範)은 구분해 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산케이 서울지국장 구로다와 평소 찰떡처럼 사이 좋게 지내다 갑자기 부인하기 시작한 조선일보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우익세력과 일본의 극우세력이 너무나 닮은꼴의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툭하면 자학사관(自虐史觀)을 극복하자고 목놓아 부르짖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정약전의 자책과 자성이 어찌 자학일 수 있겠는가.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