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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 ||
광주민중항쟁 25주년을 맞아 광주를 방문한 독일 출신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를 한국 언론은 그렇게 불렀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참상을 영상에 담아 가장 먼저 세계에 알린 힌츠페터. 그는 25년 전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당시 한국의 주류 언론이 광주의 진실을 외면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80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김대중 기자의 광주 르포 기사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시사저널이 매년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설문조사에서 10여 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의 광주 르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광주시를 서쪽에서 들어가는 폭 40미터의 도로에 화정동이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그 고개의 내리막길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그 바리케이드를 마주보면서 6백여 미터쯤 떨어진 이쪽. 도로 중앙에 철조망과 함께 '무기 회수반'이라는 글자가 쓰인 5개의 입간판이 길을 막고 있다. 바로 이곳이 총기의 반납을 기다리고 있는 당국의 전초선이다."
필자는 이 기사에서 '무정부 상태의 광주'나 '총을 든 난동자' 같은 직설적 표현보다 '동쪽 너머'와 '이쪽'이라는 지시대명사의 상징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방향을 가리키는 이 두 개의 단어가 1980년 5월 한국 언론은 과연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아프게 묻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주류 언론은 피해자의 피눈물이 서려 있는 '동쪽 너머'가 아니라 가해자의 검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이쪽'에 있었다.
국내 언론이 이렇게 계엄사가 던져주는 보도자료를 가지고 왜곡기사를 만들어내는 동안 광주의 진실을 알린 것은 외신 기자들, 즉 '푸른 눈의 목격자들'이었다. 실제로 김대중 기자의 르포 기사가 실리던 날 AFP 통신은 "광주의 인상은 약탈과 방화와 난동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란 대의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한국 군부의 야수적 잔인성은 라오스나 캄보디아를 능가한다"로 시작되는 기사를 전 세계에 타전하고 있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렇다.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외신 기자들의 눈에 비친 광주의 인상은 지옥의 묵시록인 '킬링필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광주민중항쟁 25주년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동안 외신면을 장식한 우즈베키스탄 유혈사태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안디잔의 시위 군중과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독재자 카리모프의 모습에서 '민주화의 성지 광주'와 '살인마 전두환'의 모습이 겹쳐졌으며, 입을 벌릴 때마다 독재의 종식을 노래하다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미국의 모습에선 '불타오르는 부산미문화원'이 겹쳐졌다.
이제 우리가 '검은 눈의 목격자'가 될 차례다.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