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드라마 '5공화국'이 화제다. 전두환 역을 맡은 이덕화의 연기를 두고 말들도 많다. 5공 세력에 대한 미화라는 비판도 있다. 이제는 거의 잊혀진 이름이 돼버린 과거 5공 실세들의 이름들도 자주 거론된다.
20여 년간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 썼던 5공화국. 그렇다면 그때 수원지역 의원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지역 의원들과 5공과의 인연은 어떻게 될까. 새삼스레 그들의 '과거사'가 수원 시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심재덕 의원(열린우리당)은 5공 실세였던 3허(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중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과 인연이 깊다.
심 의원과 허문도 전 장관은 서울대 농생대학 57학번 동기다. 심 의원이 잠사학과 57학번이고, 허문도 전 장관이 농학과 57학번이다.
허문도가 누구인가. 그는 80년대 언론사를 기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 현대사 산책'의 한 토막을 인용하면 그의 이력이 드러난다.
허문도는 원래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주일 한국대사관의 공보관으로 전직한 사람이었다. ... (중략)... 허문도는 전두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지금 3김씨나 최규하 대통령의 지도력으로는 나라의 장래가 불안하다. 힘을 바탕으로 한 새 질서가 창출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자칫하면 브라질이나 그리스 꼴이 될지도 모른다"며 전두환을 감동시켰다.
(허문도는 1982년도엔 문공부 차관으로 발탁됐다가 '장영자 사건'으로 2허(허화평.허삼수)와 함께 한직으로 물러났으며 84년엔 다시 대통령 정무 제1비서관으로 복귀했다가 1986년 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그 자신 스스로 14대 총선 도중 한 유세에서 "나는 40대에 이 나라를 동으로 가자, 서로 가자 해본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두환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 인사는 허문도는 "한마디로 말해 퍼내틱(fanatic, 열광적인)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 결과, 허문도는 나중에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할 때 그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고,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따라 들어갔다. 전두환의 귀를 붙잡은 그의 권세는 막강했다. 무언가 자신의 주도로 한 건 크게 올려야겠다는 허문도의 야욕은 나중에 언론통폐합을 밀어붙이는 동력이 되었다.<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제1권', p.53~54)
동기생 허문도가 5공 실세로 군림하고 있을 때 심 의원은 40대 혈기 많은 청년 사업가였다. 1976년 팔달구 지동초등학교 앞에 차린 작은 철물점을 시작으로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지금도 심 의원은 허문도 전 장관과 허물 없는 사이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심 의원의 지난 28일자 스케줄 표에는 허문도 전 장관의 장녀 결혼식이 적혀져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한 때 심 의원은 허문도 전 장관으로부터 입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74년 행시 13기로 공직에 입문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5공이 시작될 무렵 재무부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83년 영월세무서장으로 승진(4급)하고 이후 세제국 재산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등을 역임하며 평범한 관료로 살았다.
이렇게 장년의 두 의원이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5공을 살아왔다면 이기우, 남경필 의원은 5공 시절을 혈기 많은 대학생 신분으로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경필 의원(연세대 사회복지학과 83학번)이 유학을 꿈꾸며 학업에 힘썼던 '범생'(모범생의 애칭)이었다면, 이기우 의원(성균관대 금속공학 85학번)은 학생운동에 투신,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 운동의 최일선에 섰다.
남 의원의 자서전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못산다구요>에는 남 의원의 대학생 시절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남 의원에게 대학 시절은 "젊음이 발산하는 싱그러운 향기와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표현과 행동의 자유가 존재했"으며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 1학년 1학기 내내 방황"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남 의원이 혼란 속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지인들과 함께 산하를 구석구석 밟으며' 젋음을 짓누르는 억압을 견뎌내려 했다면, 이기우 의원은 학생운동에 치열하게 앞장서다가 1989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이런 이력으로 이 의원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전대협 세대로 분류되곤 한다.
5공 시절에 40대 패기 많은 사업가로, 30대 촉망받는 재무부 관료로, 젊디 젊은 대학생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켰던 이들 4인. 이제는 수원지역 의원으로 변신, 자신만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동반자'이자 '경쟁자'의 위치에 서 있다.
20여 년이 흐른 뒤 그들은 또 어디에 서 있을까?
<여의도통신=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