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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 ||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김성순 선생의 소개로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일본의 노학자(76)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1963년부터 나라여자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청일전쟁과 한국전쟁 등 한일관계사를 연구해온 그는 조선사연구회 간사, 역사과학협의회 대표의원, 일본학술회의 회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경북 김천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던 김성순 선생은 어떻게 이런 일본의 대학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사연은 이랬다.
선생은 일제시대에 대구사범을 다니면서 연마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각종 서적을 구입해서 읽던 중 한국전쟁을 새롭게 분석한 나카쓰카 교수의 저서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었던 선생은 곧바로 편지를 보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서신 교환을 통해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은 학술 교류'를 진행해 왔다.
그러다가 나카쓰카 교수가 서울에서 열리는 한일역사가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 선생이 필자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대북 첩보 활동을 통해 북한 내부의 동향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던 맥아더가 인민군의 남침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북한을 집어삼키기 위해 그대로 방치했다는, 이른바 수정주의적 시각은 한국에서도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학설이 아니다. 그러나 1949년 일본에서 연이어 일어났다는 '기괴한 사건'은 필자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나카쓰카 교수가 설명한 '기괴한 사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시모야마 사건: 1949년 7월 5일 행방불명된 국철 총재 시모야마 사다노리가 다음날 상반선 아야세역 부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미타카 사건: 7월 15일 국철 중앙선 미타카역 구내에서 무인전차가 폭주하여 사망자 6명, 부상자 10명을 낸 사건
▲마쓰가와 사건: 8월 17일 새벽 동북본선 마쓰가와역 부근에서 열차가 탈선 전복되어 기관사 등 3명이 사망한 사건.
당시 이 사건은 모두 미 점령군에게 가장 무섭고 강력한 존재였던 국철 노동자의 음모로 간주되었으며, 이때 국철 노동자 9만 명에 대한 해고가 강행되었다. 물론 장기간에 걸친 재판을 통해 점령군이 국철 노동자들에게 덮어씌운 혐의는 완전히 날조였다는 것이 판명되었지만, 원래의 상황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기괴한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 점령군은 1949년 9월 8일 재일본조선인연맹을 강제로 해산시켰고, 10월 19일 일본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선인 민족학교를 폐쇄시켰다. 1950년 1월 1일에는 맥아더가 일본공산당의 비합법화 방침을 밝히는 신년 메시지를 발표했고, 6월 6일에는 공직에서 활동 중이던 일본공산당 중앙위원을 전원 추방하였다. 다음은 이에 대한 나카쓰카 교수의 분석이다.
"이 일련의 '기괴한 사건'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본을 출격기지로 만들기 위해 군수품 수송의 대동맥인 국철을 완전히 장악하고, 또 한편으로는 반전운동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단체를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려 200만명의 사망자와 1천만명의 이산가족을 양산한 한국전쟁의 '엄청난 비극'을 발판으로 패전국 일본이 '엄청난 이득'을 챙기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전쟁 55주년의 의미를 과거처럼 흑백논리와 반공논리 식으로만 읽어내기 어려워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