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외교적 수사학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3주간의 휴회에 들어갔던 제4차 6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예정이다.

지난 7월 26일부터 13일 동안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진행된 6자회담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두 마리의 '대어(大魚)'를 낚는 것이었다.

특히 이 와중에 각국 대표들이 쏟아낸 '외교적 수사(修辭)'는 6자회담의 '조황(釣況)'을 분석하고 전망해볼 수 있는 '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찌는 물고기가 낚시를 물면 곧 알 수 있도록 낚싯줄에 매어 물 위에 뜨게 만든 부표를 말한다.

실제로 한국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의 일련의 발언만 되짚어 봐도 굴곡 많은 6자회담의 흐름은 그대로 읽혀진다. 시간 순서대로 나왔던 주요 발언에 제목을 붙여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항해사론: "'어느 항구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항해사에게는 아무리 순풍이 불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있다"(7월 26일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인용해 했던 발언. 북한측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배-항구론'에 대한 화답).

△공중회전론+물잔론: "체조선수가 고난도의 공중 세 바퀴 돌기를 하다가 떨어지면 두 바퀴를 돈 것만도 못하다. 지금은 물잔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고, 아직 채울 공간이 많다"(7월 27일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했던 발언. 각국 대표가 회담 성과에 대해 조급하고 지나치게 기대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자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교통체증론: "1주일간 국도를 따라 도심 입구까지 왔는데 도심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거리는 멀지 않지만 신호등도 많고 체증도 심해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타결이 예상됐던 7월 31일 이후에도 북미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했던 발언).

△1지붕 2기둥론: "지엽적인 문제까지 논의할 단계는 아니며 현재 한 지붕 밑에 두 개의 기둥을 얘기하고 있다"(한반도 비핵화로 회담 목표를 단순화시킨 뒤 북한은 핵 폐기를, 미국은 외교관계 정상화를 약속하라고 은근히 촉구한 발언).

△재천론: "모사재민(某事在民) 성사재천(成事在天)"(직역하면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는 뜻).

△광주리론: "회의에 모일 때 과일을 담을 광주리를 준비해 왔는데 광주리에 물까지 담으려는 과욕을 부렸다"(8월 7일 휴회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했던 말. 원칙론을 고수함으로써 결국 휴회를 선언하게 만든 북한과 미국 양측에 실용적 접근을 주문하면서 했던 발언).

결국 북한과 미국 사이에 쌓여 있는 불신을 걷어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6자회담 성공의 핵심적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소신이 있다'와 '적극적이다'라는 긍정적 의미가 순식간에 '고집을 부린다'와 '설치고 나서길 좋아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둔갑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했다.

외교에서든 인간사에서든 '말' 이전에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