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분립의 한 축으로 대(對) 행정부 견제와 감시 역할을 맡고 있는 국회가 정작 나라 살림의 결산은 대충 대충하고 있어 관련 법 개정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수십조 쓴 결산, 단 몇시간만에 뚝딱 = 지난 2004년 정부 예산은 일반회계를 기준으로 117조 5천억원이었다. 거기에 기금 등 특별회계의 237조원을 합치면 지난해 행정부의 각 부처가 쓴 돈은 약 350조원이 넘는다.
각 부처별로 봐도 수십 조 원이 넘는다. 행정자치부의 경우 지난해 예산은 약 22조원이었다. 하지만 국회가 이렇게 큰 규모의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사용내역, 즉 결산안을 심사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쓰는 회의 시간은 단 몇 일에 불과하다.
열린우리당 심재덕 의원이 소속돼 있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담당 부처의 결산을 위해 16일, 17일, 18일 등 겨우 3일 동안 회의를 열 예정이다. 그나마 행자부 외에 중앙인사위원회, 경찰청, 소방방재청, 중앙선관위 등의 결산안 심사를 위해 배정된 이틀을 제외하면 행자위는 16일 하루 동안 행자부의 결산 내용을 심사할 수 있을 뿐이다.
22조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쓴 ‘결산’ 내용이 단 몇 시간 만에 처리되는 것이다.
◇ 의원들 의욕 없고 엉뚱한 질의만 = 지난 16일 행자위 회의 결산 자리. 행자위는 이날 하루 동안 담당 부처 중 행자부의 결산안을 심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의는 시종일관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질의나 출신 부처를 ‘배려’하기 위한 질의로 흘렀다.
한 의원은 ‘결산’과 전혀 관련없이 지역구 아파트 건설 문제에 대한 행자부의 ‘성의’있는 자세를 요구했고, 경찰 출신인 또 다른 한 의원은 ‘경찰 정원 증원’을 요구하느라 질의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이렇게 얼마 안 되는 시간마저 대부분의 의원들이 결산과 관련 없는 민원성 질의로 허비되고 있었다.
심재덕 의원은 고속도로 화장실 실태 현황을 파악한다는 명목으로 청가서를 제출하고 회의에 불참했다.
◇ 원인과 대책은? = 이렇게 나라 살림의 ‘가계부’인 결산안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우선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1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실. 행정자치부 결산보고가 있었다. 열린우리당 심재덕의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여의도통신 김진석/ photo@ytongsin.com
‘앞으로 쓸 돈’인 예산안 심의에선 지역구에 생색낼 수 있는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의원들이 앞다퉈 노력하지만, ‘이미 쓴 돈’인 결산안 심의에 대해선 굳이 신경을 써 잘잘못을 가려낼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또 정부부처의 결산안이 국회에 늦게 제출돼 심사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03년 개정된 국회법에는 정부가 결산안을 5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현재 예산회계법상엔 정부는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 2일까지만 결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된다.
그러면 회는 이를 겨우 2달 만인 11월 2일까지 처리해야 한다. 그나마 국정감사 기간을 제외하고, 또 10월 초에 내년도 예산안이 제출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감안하면 결산안을 꼼꼼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여야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가 결산안을 제출하는 시기를 5월말로 앞당기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제출했지만, 현재 여야간 의견 차이로 상임위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이 ‘쓸 돈’ 못지 않게 ‘쓴 돈’에 대한 감시도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의원과 보좌관들이 회계에 대한 전문성을 좀 더 갖춰야 하며, 관련된 각종 법 제도적 개선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의도통신= 김동현ㆍ김봉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