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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 ||
무엇보다 먼저 식민 지배와 피지배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두 나라가 어색한 분위기에서나마 회담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미국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한일 양국 대표는 한국전쟁 와중인 1951년 10월 21일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중재 하에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도 1963년 취임 직후 이 문제에 관심을 표했다. 존슨은 그해 방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일수교 정상화가 극동 안정에 공헌을 할 것으로 믿는다." 러스크 국무장관은 한 술 더 떴다. 1964년 2월 주미 한국대사에게 이렇게 요구한 것이다. "일본 국회 회기가 끝나기 전에 조약 비준을 받을 수 있도록 교섭이 종결되기를 희망한다."
한일 양국이 결코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던 상황에서 한일수교 협상은 막바지로 치닫는다. 1965년 4월 29일 번디 국무무 차관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 전에 한일협정이 타결되기를 바란다"고 다그쳤고, 마침내 6월 22일 기본조약과 어업협정 등 5개 협정이 전격 타결됐다.
한일수교를 성사시킨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가 심증(心證) 차원에서 물증(物證)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셈이거니와, 이것은 우리에게 과연 미국은 어떤 존재인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화두이기도 하다.
세계 유일의 최강국에 나라의 운명마저 저당 잡혔다는 사실에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런 나라와 우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에 소개하는 일화는 매우 시사적이다.
영국 황실의 여객선인 브리태니커호가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안개와 어둠 속에 정체 불명의 불빛이 나타나더니 배를 향해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선장이 스피커를 들고 소리쳤다.
"비켜라! 여기는 거룩한 영국 황실의 브리태니커호다!"
그러나 불빛은 앞으로 계속 다가왔다. 선장이 다시 외쳤다.
"미쳤나? 어서 비켜라! 여기는 거룩한 브리태니커호다!"
그런데도 불빛은 점점 더 다가왔기 때문에 선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욕을 퍼부었다.
"미쳤나? 어서 비키지 못해! 어디서 감히!"
마침내 불빛 쪽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미친놈은 바로 너다! 여기는 거룩한 등대이시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미국을 '등대'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사에서 '영원한 제국'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밝혀야 할 '등대'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