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와일드카드를 아십니까

[재미로 읽는 국회 야근 법칙]

제1법칙, 신입 보좌는 빡세다? 초선의원 사무실이 모두 29곳, 17대 국회 초선 비율과 비슷하다. 2선 의원실이 9개, 3선 의원실은 7개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다선 의원의 야근 강도가 약하다고 짐작하면 오산이다. 한 여성 보좌관이 "일요일에 출근해서 목요일 밤에 퇴근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야근은 여대야소? 2법칙이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실이 25곳, 한나라당은 17곳으로 나타났다. 2곳이 민주노동당, 자민련은 1곳에 그쳤다. 3법칙. 여자 의원 보좌하기가 더 힘들다? 45개 의원실 중에 36명이 남자 의원, 여자의원은 9명이다. 20%는 17대 국회의원 성비(13.4%)를 뛰어 넘는 비율.

끝으로 많은 의원이 국감 보도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언론사 출신 의원 보좌진들의 야근율이 낮았다. KBS 출신 의원 사무실이 2곳, 나머지 한 곳은 월간 '말'지 기자 출신 의원실. 신문기자 출신 의원 보좌진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면 4법칙은 먹어봐야 맛을 안다?

물론 모두 취재 당일 밤에만 적용할 수 있는 법칙들이다. 하지만 야근만은 지울 수 없는 엄연한 사실. 야근이 칭찬받을 만한 것도, 권장할 만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격려는 필요하지 않을까. 6일 새벽, 의원회관 '와일드카드'들을 소개한다.

   
▲ 6일 자정, 정면에서 바라본 의원회관 모습.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잠들어 있는 딸의 키를 잰다. 물론 누워 있기 때문에 한 뼘씩 옆으로 잰다. '이만큼 컸다'며 좋아하는 남편. 대뜸 아내는 '언제 애가 깨 있을 때 들어와야 말이지'라고 푸념한다. 형사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와일드카드>의 한 장면이다.

국회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애들 얼굴 보기 어렵다", "언제부터 전과는 다르게 애가 아빠와 거리를 두는 것 같아 속상하다"등등. 그만큼 야근이 잦다는 말이다. 사실 의원 사무실이 모여 있는 의원회관에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는 것은 국회에서 아주 흔한 풍경이다.

특히 국정감사 시즌에 노동 강도는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1년 동안의 정부 감시 활동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 올해 국감은 9월 2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국감을 코앞에 둔 요즘, 야근을 하는 보좌진들은 얼마나 될까.

5일 밤 자정, 의원회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수가 많다. 하나, 둘, 셋...서른 개의 불빛을 세다가, 의원회관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경위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사무실의 숫자'를 묻는 질문에 "80곳이 넘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12시 30분, 취재진은 직접 세어보기로 했다. 국회의원 사무실은 의원회관 2층부터 8층에 위치하고 있다. 먼저 8층에 올라갔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쭉 늘어 서 있는 사무실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사무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금방 눈에 띈다. 모두 여섯 곳에 불이 켜 있다.

계단과 복도를 오르내리는 발걸음 소리만 요란하다. 7층 11곳, 6층 7곳...새벽 1시경, 모두 45개 사무실에 불이 켜 있다. 한 사무실에 2명씩만 계산해도, 얼추 백 여명이 의원회관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80여 곳에 많이 모자란다. 열쇠를 반납하고 퇴근한 현황이 미처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취재진이 돌아다니는 동안에 사무실을 비울 수도 있다.

모두 야근 중인지는 확실치 않다. 9개 사무실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사무실 문은 활짝 열려 있어, 야근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컴퓨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모습, 동료와 뭔가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 가끔 반바지 차림도 눈에 띈다.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 사무실에서 김홍석 보좌관과 밤 인사를 나눴다. 간이침대 일명 '라꾸라꾸'가 보인다. 김 보좌관은 "작년 국감 기간에 6-7주 동안 거의 매일 밤샘작업을 했다"며 "작년에는 잘 몰라서 밤을 샜다면, 올해는 당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라꾸라꾸'는 경험의 산물인 셈이다.

경험은 생각도 바꾼다. 김 보좌관은 "국회 들어오기 전에는 놀고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면서 "국감 기간에 매일 3백 개가 넘는 보도자료가 쏟아지는데 기자들이 다 볼 수 있겠느냐. 그만큼 노력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야근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 6일 자정을 넘긴 시각, 김문수의원실의 한 보좌관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보좌관 뒤로 보이는 벽시계는 현재 시각이 새벽 1시 20분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1시 40분경,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초선의원 보좌관의 생각이 그렇다면, 다선 의원 사무실 분위기는 또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3선의 김문수 의원(한나라당)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에도 3명의 보좌진이 밤을 잊고 있었다. 책상 위에 있는 컵라면 용기가 야근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듯 하다.

하지만 대화 중에 피곤의 기색을 엿보기 어렵다. "자료 싸움", "면밀하게 때릴 수 있는 근거 수집", "그러다 보면 금맥도 나오지만, 돌맥으로 끝날 때도 있다"는 등 전문 용어(?)가 튀어나온다. 야근이 싫겠지만, 그렇다고 거부하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왜? 무엇이? 서지영 비서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단순해요.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의원회관에서 나온 시간은 2시 30분. 아까보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사무실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쌩쌩하다. 와일드카드. 카드게임에서 쓸 수 있는 만능패. 그리고 스포츠에서 일보 전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지막 티켓. 대한민국 정치1번지의 와일드카드는 바로 많은 보좌진들이 아닐까.

<여의도통신 = 이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