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 급식조례안 제동

대법원 무효판결 … 도내 7개 시ㆍ군에 영향줄 듯수원시의회 "도 급식조례 대법원 판결 보며 결정"

'우리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사용토록 규정한 광역자치단체의 조례는 무효라는 지난 8일 대법원 판결로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인 ‘경기도 학교급식 지원 조례안’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범국민적 선호 정서보다는 법리적 판단을 중시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미 '우리 농산물'로 조례를 제정한 경기도, 안양시, 평택시, 안산시, 고양시, 구리시, 이천시 등이나 시민단체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교급식조례 제정 운동 역시 방향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GATT가 급식조례 무효판결 원인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할 수 있는 방안을 법으로 규정하자는 움직임은 2001년부터 본격화됐다.

식중독 및 식습관 왜곡 등 급식사고가 빈번한 현실에서 학교급식의 질적 개선을 통해 성장기 학생의 건전한 식생활 습관 형성 및 심신의 발달을 도모할 수 있도록 믿을 수 있는 우리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자는 취지였다.

조례가 제정되면 일선 학교를 통해 우리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례 제정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대법원 3부는 지난 9일 전북도교육청이 전북도의회를 상대로 낸 학교급식조례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 급식업체를 지원한다는 전북도의회의 조례는 수입 농수축산물의 ‘내국민 대우 원칙’을 명시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어긋나므로 효력이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취지에 어긋난다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산으로 조례 제정한 도내 7개 시ㆍ군 영향 미칠 듯

이번 판결에 따라 도내 31개 시ㆍ군의회 중 수원시를 비롯한 부천시, 광명시, 의왕시를 제외하고 이미 '국내산'으로 조례가 제정된 경기도를 비롯한 7개 시ㆍ군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광역자치단체와 달리 GATT의 적용을 받지 않지만 경기도에서 제정되는 조례가 상위조례이기 때문에 상위법에 어긋날 수 있어 궁극적으로 판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는 향후 추이를 보며 학교급식지원 조례에서 '우리 농산물'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등 조례정비 작업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조례에 '우리 농산물'이라는 표현이 삭제돼도 '친환경' 혹은 '품질 좋은 우수 농산물' 등의 표현으로 충분히 본래 의미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우리 농산물 대신 값이 싼 수입농산물로 대체되고 비중도 높아져 갈 것이라는 이른바 '시장논리'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식량주권 포기" VS "우수 농산물로 바꾸면 문제 없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부는 반색했고 교육 및 시민단체는 거세게 비난하는 등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판결 직후 성명을 통해 “식량 자급률 25.3%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식량 주권을 지켜내고 농업,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 잘못됐다는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도 “대법원이 우리 농산물 학교급식 법제화를 무효로 판결한 것은 전국의 300만 농민과 한국 농업에 대한 말살책에 다름없다”며 대응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천명했다.

반면 우리 농산물로만 급식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교육청이나 학교 관계자들은 우리 농산물 급식 조례가 GATT 협정 위반이란 사실을 수차례 알렸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교육부도 ‘우리 농산물’이라는 표현을 ‘우수 농산물’ 정도로 바꾸면 값싼 농산물이 학교 식탁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의견 엇갈려 … "한목소리 내야" 지적

수원시의회는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제233회 임시회에 주민청구로 상정된 ‘수원시학교급식지원조례안’을 GATT로 경기도학교급식조례가 대법원 계류 중으로 추이를 보고 제정키로 결정하고 이를 보류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단체별로 입장이 나뉘는 등 분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수원환경운동센터, 수원YMCA, 수원YWCA는 '국내산 우수농산물'을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우수농산물'로 수정해 내년 선거 전 조례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노당, 수원환경운동연합, 학부모연대는 국산농산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이 우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통합되지 않은 의견들이 난무할 경우 입법기관인 수원시의회가 조례제정에 소극적이거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견지에서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학교급식조례 제정의 필요성은 행정기관이나 교육기관, 시민단체, 학부모 등 모두가 알고 있다”며 “하나 된 의견으로 법적 테두리에서 학교급식조례가 제정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