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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 ||
북한과 미국이 주연(主演)을, 남한과 중국이 연출(演出)을 담당한 이 '6자회담 드라마'가 펼쳐진 무대는 베이징에 위치한 댜오위타이(釣魚臺). 말 그대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월척'을 낚은 셈이 됐다.
그러나 타결 직전까지만 해도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선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이 재개된 지난 13일 "우리는 경수로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핵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반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경수로를 고집하는 한 회담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북미는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였다.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은 결국 6자회담 드라마의 극적 반전을 위해 설정된 위기에 불과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실제로 전체회의가 시작된 19일 낮 12시가 조금 넘어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의 "공동성명 발표에 합의했다"는 모두발언이 회담장 밖으로 전해졌고, 추석 연휴 마지막 날 TV 화면 하단에는 큼직한 타결 속보 자막이 뜨기 시작했다.
회담 타결 직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서로가 '윈-윈'한 것으로 오늘은 위대한 날(great day)"이라고 논평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시발점이 될 것이며 한반도 평화 구축으로 향하는 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시아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전달된 6자회담 타결 속보는 따라서 평화를 원하는 아시아인에게 상생의 선물이 됐다. 아울러 9.19는 6.15, 7.7, 7.4 등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 연대기적 화인(火印)을 찍게 됐다.
이번 9.19 합의의 가장 큰 역사적 의미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회담 과정에서 한국의 외교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주도적이고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던 상황을 대북 중대제안으로 돌파했고, 고비와 위기 때마다 북한과 미국 양측을 동시에 설득해내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경주했다.
남한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지난 8월 7일 북한과 미국 양측에 실용적 접근을 주문하면서 했던, "광주리에는 과일을 담아야지 물까지 담으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그러한 외교적 노력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운명과 관련된 문제를 담판 짓는 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는, 일부 언론의 역사적 의미 부여가 그래서 크게 과장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물론 또 다른 어느 언론의 표현대로 이제 1막 1장이 시작됐을 뿐이라는 지적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