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수유를 해열제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런데 산수유의 효과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산수유는 대표적인 보약제 중의 하나로 약간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열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하면 안 되는 약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고열에는 차가운 성질의 약재를 사용해 그 열을 꺼주는 것이 원칙이다.
산수유는 간신의 부족으로 인한 어지럼증, 이명(耳鳴)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또 신장의 기운이 부족하여 생기는 정력감퇴, 만성요통, 소변 빈삭 또는 식은땀이 그치지 않는 경우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산수유는 성질이 다소 따뜻하고 수렴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허열(虛熱ㆍ몸이 허해서 생기는 이상발열)이 떠있는 경우나 성신경이 이상 흥분되어 있는 경우, 또 몸에 열이 있는 경우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의가 필요하다.
참고로 산수유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씨를 제거해야 하는데, 씨는 유정증상을 유발하고 정력감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을 보게 되면 해열제와는 전혀 다른 효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못 알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학창시절 때 배웠던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의 내용을 보면 어린 아들은 고열에 시달리고 있고 아빠는 눈이 쌓인 추운 겨울날에 어디서 산수유를 구해 오신다.
그런데 왜 산수유였을까? 그런데 아마도 산수유가 붉기 때문에 열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잘못 이해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고열에 시달리는 데 산수유를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산수유는 해열제가 아니고, 신장을 강화시키고 방광의 조절능력을 향상시켜 어린아이들의 야뇨증을 다스리며, 성인들에게는 정력을 도와주는 보약제의 하나이다.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아버지의 큰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반드시 좋아졌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시에서의 산수유 부분은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다. 그러나 시는 시로써의 목적이 있는 것이며 일부분의 내용은 한없는 부성애를 표현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다. 만추에 산에서 ‘산수유 붉은 알알’을 본다면 다시 한번 아버지의 큰 사랑에 대해서 가슴속으로 느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