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에선 여러 아이 중 그저 한 아이일 뿐이잖아요”
아홉 살, 다른 친구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김태미(19)양은 수원 영통 나자렛 수녀원에 맡겨졌다.
갑작스런 환경 변화 탓일까. 태미양은 자신이 왜 그곳에 오게 된 것인지, 언제 나가게 될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됐다.
7년 후, 태미는 한창 사춘기로 접어들며 별 탈 없이 지내왔던 수녀원 생활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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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24일 오후. 엄마 윤금희씨 가게에 찾아 온 세 딸 지혜, 태미, 지영이가 엄마와 함께 해맑게 웃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큰 딸 정지혜, 막내딸 정지영, 엄마 윤금희씨, 둘째딸 김태미양. | ||
수녀원에서 함께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혹은 입양되며 모두 떠나고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과 지내게 된 태미에게는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의 그리움이 컸다.
때로는 가출과 어긋난 행동으로 방황기를 겪으며 지내던 수녀원에서 나가고만 싶었던 태미는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자는 친구 정지혜양의 제안으로 3년 전 윤금희씨의 딸이 됐다.
“엄마, 우리 왔어”
쌀쌀한 겨울추위가 이어지던 지난 24일 오후, 엄마 윤금희씨가 영통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야촌 숯불갈비집 문을 열며 두 명의 어여쁜 여학생이 들어온다.
수원 팔달공업고등학교에 재학하며 올해 3학년에 되는 동갑내기 태미와 지혜.
중학교 시절 전혀 모르고 지내다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며 알게 된 태미와 지혜는 서로 다른 차분한 성격과 쾌활한 성격이 잘 맞아 자연스레 친구가 됐고 그것을 계기로 지금은 둘도 없는 자매로 지낸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내 동생, 우리 언니, 우리 엄마ㆍ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해요”
윤금희씨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된 처음부터 화목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하나 뿐인 동생 지영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잦은 말다툼과 왠지 모를 소외감으로 한 때 가출까지 했었다.
하지만 엄마 윤금희씨의 며칠 동안의 발품과 걱정, 사랑으로 다시 가족의 품에 들어온 태미는 그제야 ‘가족의 사랑’을 깨닫게 됐다.
엄마의 가게에 손님이 북적이던 2년 전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태미와 지혜, 지영은 엄마의 일손을 도와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족이 된 후에도 윤금희씨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던 태미는 밀려드는 주문과 손님들의 부름에 정신없이 움직이다 처음으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라고 말하고 나서 순간 머릿속이 멍했어요.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로 집에 가서 골똘히 생각하고 결정했어요. 엄마라고 부르기로 ….”
‘엄마’와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태미에게 있어 가족의 의미는 더욱 커졌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우리 엄마와 아빠, 내 동생이라 말하며 가족의 의미와 사랑, 존재감을 느끼며 태미는 마음과 생활의 안정을 되찾았다.
가끔은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자매들과 티격태격하며 태미는 가족의 큰 사랑을 배웠다. 세 명의 딸과 엄마, 그들에겐 행복과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옆에서 태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던 지혜는 “언제나 친구처럼 함께 있어주고 부모님에게 저보다 잘하는 태미를 보면 너무 고마워요”라며 친구이자 자매인 태미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엄마가 내온 속이 꽉 찬 만두를 먹고 있던 지영이도 “지금은 하루만 없어도 허전해 서로 찾게 된다”며 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금방이고 눈시울이 붉어지던 태미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서먹한 자리에 곧 웃음꽃이 핀다.
끝없는 내리사랑으로 딸들을 키워온 엄마 윤금희씨와 유치원 선생님이 돼 아이들에게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태미, 남들이 잘 하지 않고 특색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지혜, 어리광쟁이 막내 지영이.
그들의 따뜻한 가족愛가 어스름 내려앉던 겨울 저녁을 훈훈하게 녹여주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