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서 관료를 넘어, 멈추지 않는 꿈

[휴먼스토리] 진대제 前 정보통신부 장관의 삶과 꿈

▲ 진대제 前 정보통신부 장관
▲가난을 통해 단단하게 성장하다

지리산 산골 첩첩산중 속에서 온 마을을 합쳐도 논밭이라고는 손바닥만한 땅 몇 뙈기가 전부였던 척박한 어린 시절. 진대제 전 장관은 친척들은 물론 가족들도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네 살 때 고향을 등지고 대구로 이사했지만 가난은 어쩔 수 없어, 어머니는 남의 집 빨래며, 시장 청소며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고 진 전 장관은 누이의 등을 엄마 품으로 삼아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배고프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고 전과책 한 권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진 전 장관의 누이들은 지금도 그를 보면 어린 시절 못 먹고 자라 이렇게 키가 작다며 안타까워한다.

진 전 장관은 기워 신은 양말, 발가락이 나오는 운동화, 아이들 앞에 내놓기에 차마 부끄러웠던 보리밥 도시락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자연을 관찰하며 점토를 가져다 도자기를 만들어 굽고, 모터를 주워다 배와 비행기를 만들었던 꿈많은 소년이었다.

그는 시행착오 속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주워 온 모터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려고 호롱불 아래서 밤을 새우기도 하는 집념을 보이기도 했다.

가족 모두가 먹고 살 대책이 절실했던 시절, 진 전 장관은 이제 스스로 밥 벌어 먹을 생각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해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마음먹는다.

그런 그에게 옆집에 살던 누나의 말 한마디로 인생의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어린 진대제에게 그녀는 “큰 누이가 있는 서울로 가서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경기고등학교의 교과서 한 보따리와 용돈까지 보태줬다.

결국 이웃 누나의 진심어린 도움이 이후 진대제의 삶을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됐다.

경기고에 입학한 진대제는 아버지와 함께 서부 이촌동의 사글세 단칸방을 얻어 살게 됐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고 어머니가 조금씩 용돈을 보내왔지만 돈이 떨어져 끼니를 거른 날이 많았다. 심지어 하교 후 귀가해보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며 하루 아침에 보금자리가 헐려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이 일을 통해 진대제는 절대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공부한 그 자리에서 자고 다시 허리만 일으켜 공부하는 ‘오뚝이 공부법’으로 이후 진대제에게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남다른 집념과 강한 승부욕이 자리잡게 된다.


▲ 사진 위부터 <1>초등학교 3학년 시절 고향 뒷산에서 작은 누이와 함께 <2>경기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신 부모님과 함께 <3>2005년 미국 비즈니스위크 아시아스타상 수상 장면. <4>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받던 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장학금을 위해 1년 ‘유학재수’를 하는 동안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유학시절은 고생스럽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5>백두산 천지에 제사를 지내려고 가져갔던 반도체 기념패. 날씨 때문에 결국 천지에 던져 넣는 것은 포기했다.
▲ 반도체로 세계 제패의 신화를 쓰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반도체에 매력을 느끼고 석사과정을 마친 진대제는 1976년 생긴 ‘국비유학생’ 제1호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학업을 시작한 진대제의 앞길은 쉽지 많은 않았다.

박사자격 시험통과를 위해 전혀 낯선 분야였던 컴퓨터 분야 공부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고,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난의 장벽과도 싸워야 했다.

결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대제는 당시 난제로 여겨지던 ‘새 부리 성장현상’에 대한 물리적 해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진대제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반도체 참고서에 수록되기까지 한다.

학업을 마치고 세계 최고의 기업 IBM에서 잘 나가던 핵심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진대제는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일본을 삼켜버리겠다’는 각오로 조국을 선택한다.

아직 반도체의 불모지였던 1985년, 그는 삼성에 입사해 16MD램을 개발해 삼성을 반도체 메모리 사업 세계 1위로 끌어 올린다.

이후 그는 삼성 15개 사업 중 14위 실적을 기록하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사업을 3년만에 그룹 내 4위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디지털미디어 분야의 도전을 위해 2000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에 취임한 그는 디지털 TV로 소니와의 한판 승부를 선언하고 난공불락이라던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려 세계 초일류 기업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 나라의 10년 후 먹고 살 거리를 걱정

10년 뒤 국민들이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보자는 부름을 받고 일주일만 더 근무하면 몇백억원의 스톡옵션을 받기로 돼 있던 개인적 부를 과감히 포기하고 행정관료의 길을 택한다.

정부의 공무원 조직에 기업 개념을 도입한 정보통신부의 최고 경영자 진 전 장관은 기업시스템을 정부조직에 과감하게 적용한다.

무엇보다 정부수립 이래 최초로 자체 부서예산 삭감 등 취임 3년 만에 정보통신부를 정부 내 일등 조직으로 만드는 동시에 청렴도에서 2년 연속 1등을 차지하기도 한다.

세계가 깜짝 놀란 정보통신 일등국가, 첨단강국 IT코리아를 만든 선봉장. 진대제 전 장관에게는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정통부 재직 시절, 진 전 장관은 천연 자원이 부족한 미래 대한민국의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해 왔다.

그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준에서 8년째 멈춰 있는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울 동력은 결국 IT와 과학기술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그의 ‘대한민국 신성장 동력 IT839 전략’과 휴대용 고속인터넷 와이브로(WiBro)는 그러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세계 최초 DMB 개발로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으로 공중파 방송을 시청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무선 인터넷을 가능케 한 진대제 전 장관의 꿈은 아직도 미래 한국의 먹고 살 거리를 향해 멈추지 않고 있다.

     < 진대제가 살아온 길 > 

▲ 진대제 前 정보통신부 장관
▲ 경기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석사
▲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스탠포드대 전자공학 석사
▲ 미국 IBM WATSON연구소 연구원
▲ 삼성전자 미국현지법인 수석연구원
▲ 삼성전자 System LSI 사업부장, 대표이사 부사장
▲ 삼성전자 중앙연구소장
▲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사장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 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