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번째 약속’ 실천 도전기

[휴먼스토리] 열린우리당 염태영 수원시장후보의 삶과 꿈

▲ 열린우리당 염태영 수원시장 후보
▲ 젊은 시절, 두 가지 약속과 만나다.

연이어 딸만 둘을 본 후 첫 아들을 얻은 염태영의 아버지는 날듯이 기뻤다.

파주염씨 북석공파의 작은집 계열이었던 염태영의 아버지는 딸만 둘을 낳고 부모를 뵐 면목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낳은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기뻤으랴. 부농은 아니었지만 농사도 남들만큼은 지었고, 철도수리 기술자로 공직에 몸담았던 아버지 덕에 태영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염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났다. 고1때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업고 그는 고등동에서 지동까지 뛰고 또 뛰었다. 염 전 비서관은 지금도 어머니를 업고 달렸던 성빈센트병원 앞 언덕길을 잊지 못한다고 회상한다.

이후 염태영은 여동생, 남동생을 책임지는 소년가장이 됐다. 학업에 열중했지만 부모님을 잃은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진 못했다. 그는 미술에 몰두하면서 정신적 방황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이때 만난 이가 바로 현재 파주염씨 종친회 회장을 맡고 있는 염규택 회장이다.

염 종친회장은 태영의 형편을 알고 장학금을 전달했고 이에 염태영은 평생을 두고 갚겠다는 약속을 했다. 염태영 후보는 “종중 할아버지께서 주신 장학금은 내게 세상과 공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한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던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대학에 다니면서 화홍야학을 거쳐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경험하고 다양한 민주화운동의 대열에 서있던 염태영은 졸업을 앞두고 두 가지의 길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당시엔 대학 졸업 후 농민운동, 노동운동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운동권 학생의 당연한 진로였지만 염태영 후보에게는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두 동생이 있었다.

그는 현장으로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두 번째 약속을 한다. 반드시 너희에게 품었던 미안함을 갚겠노라고. 언젠가 사회를 위한 일에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 <1>중고등학교 시절, 염태영 후보의 부모님이 그의 곁을 떠나 동생들을 책임지는 소년가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철도공무원인 아버지와 함께. <2>어린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염태영 후보는 화선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 ‘살고 싶고, 살맛나는 도시’라는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싶어한다. <3>어렵고 힘든 여정마다 믿고 따라준 아내에게 또 한번 이해를 구한다며 “여보 고마워!” 결혼식 장면 <4>염태영 후보가 수원시민과 함께 만들고자 하는 명품도시는 경제가 살아있어 풍요로운 도시, 여성과 어린이가 편하고 행복한 도시, 시민들의 지혜와 참여로 살아있는 도시이다. <5>염태영 후보는 “현장에 해답이 있다”는 신념으로 수원지역을 순례하며 서민들의 한숨소리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들의 저력을 몸으로 느꼈다.
▲ 시민운동 성공신화 - 두번째 약속 실천

첫 번째 직장인 미원에 이어 삼성종합건설로 옮긴 염태영은 대기업의 경영과 경제의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다. 그가 기술계통의 고시로 통하는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염 전 비서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 정신’을 삼성에서 배웠다고 떠올린다.

막내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염태영은 사회를 위한 활동으로 돌아가겠다는 10년 전의 약속을 생각하고 다시 한번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결국 그는 사회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1994년 수원환경운동센터를 설립한 염태영 후보는 시민운동에 전격적으로 나서면서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에 나섰다.

1996년 수원천 복개문제가 불거지면서 염태영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청계천 복원사업보다 10년 앞서 그는 ‘수원천 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사무국장을 맡았다. 1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수원천을 국내 최초의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시민운동을 성공시켰다.

이후 그는 살맛나는 마을 만들기를 위한 전 세계인의 실천운동인 ‘21세기수원만들기협의회’와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에 이어 ‘지방의제21전국협의회’를 만들고 이끌었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염태영은 UN이 주최하는 2002세계환경정상회의 준비를 위한 한국대표로 발탁되기까지 한다.

염태영은 화장실 문화의 메카, ‘수원’을 만드는데도 기여했다. ‘수원시 화장실문화협의회’를 만들어 으뜸화장실 콘테스트와 학교화장실 개선운동을 펼쳐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 개선운동의 싹을 틔웠다.

염태영은 “수원천되살리기,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화장실 문화개선운동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원시민의 힘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세번째 약속 실천을 위한 도전

염태영 후보는 캐나다의 노스 밴쿠버와 일본의 지바현, 브라질의 꾸리찌바 등 외국의 선진도시를 방문하면서 '내가 사는 수원도 시민참여형 도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생각했다. 선진도시를 여행하면서 내가 자란 고향, 수원에서 초록의 실험을 하고 대안운동을 펼쳤던 염 후보는 시민이 주인되는 도시를 가꿔보리라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다.

2003년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염태영은 이후 시민운동의 젊은 리더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청와대 국정과제담당 비서관에 발탁된다. 청와대에서 그는 정부의 국토정책, 산업정책, 에너지정책 등 주요 정책을 만들었고, 굵직한 현안들을 주도하며 청와대에서의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나갔다.

염태영은 수원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21세기형의 새로운 리더가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 수원시는 독자적 발전전략 부재, 급속한 부채 증대, 재래시장 등 골목경제의 만성적 침체, 각종 이해관계의 충돌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수원의 자존심이 상처받고 있고, 미래의 발전과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여론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염태영은 ‘명품도시 수원’을 꿈꾸고 있다. 수원시민과 함께 만들고자 하는 명품도시는, 경제가 살아있어 풍요로운 도시, 역사의 향기와 신나는 주민축제가 있어 살맛나는 도시, 시민들의 지혜와 참여로 살아있는 도시이다.

염태영은 젊은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를 잊고자 몰두했던 그림 그리기를 떠올리며 “지금은 화선지에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 ‘살고 싶고, 살맛나는 도시’라는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싶다”던 세번째 약속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염태영이 살아온 길

▲ 수성고, 서울대 졸업
▲ 환경기술사(수질관리) 자격취득(1993년 7월)
▲ 삼성종합건설 근무
▲ 녹색연합 조직위원장
▲ 수원환경운동센터 사무처장, 공동대표
▲ 수원천 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 사무국장
▲ 수원화장실문화협의회 회장
▲ 수원의제21, 경기의제21, 지방의제 21 사무처장ㆍ운영위원장
▲ UN환경정상회의 준비회의 한국대표(2002년)
▲ 청와대 국정과제담당 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