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으로 일군 주식회사 ‘수원’의 CEO

[휴먼스토리] 한나라당 김용서 수원시장후보의 삶과 꿈

▲가난한 어린시절, ‘워커맨’정신으로 일어서다

▲ 한나라당 김용서 수원시장 후보
수원 토박이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던 김 시장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교실 밖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교 졸업 후 생업에 뛰어들었다.

단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이발사 보조를 첫 직업으로 택한 김 시장은 전자제품 수리공, 종합병원 실험실 직원을 거쳐 농기계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농기계 판매 사업을 하던 시절 항상 군화만을 신고 다니며 하루 네 시간만 수면을 취하고 일에 매진하면서 ‘워커맨’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13년간 농기계 전국 최다 판매왕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명절조차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황소처럼 일했던 당시처럼 지금도 그는 하루 네 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인생의 밑바닥부터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세상과 싸워왔던 그 시절의 경험 덕분에 그는 어떤 도전과 난관과 맞닥뜨려도 정면돌파 할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 수원시의원 11년 - 행정

주민과의 대화와 민원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김 시장이 수원시의회 위원이 되던 1991년부터 시작된다. 김 시장은 지방의회가 부활된 1991년 권선구 매교동 선거구 시의원으로 수원시의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생활정치에 입문한다.

시의원 시절 지역민원과 현안문제, 민원 당사자들과 만나면서 집행부와 타 기관과 협의ㆍ조율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의 마음을 좀 더 깊숙이 헤아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지금의 자신을 세우는 큰 바탕이 됐다고 강조한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6대 수원시의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수원의 현안이었던 도로교통과 교육민원 등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이 민선 3기 시장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 <1>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을 벗어나기 위해 김 시장은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왼쪽 두번째가 김용서 시장) <2>부인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김 시장 <3>2005년 전국 장애인 수영대회를 찾은 김 시장. 그는 복지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싶다고 말한다. <4>2003년 한 중앙 일간지에서 김 시장과 박지성 선수를 ‘축구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할 만큼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5>그는 시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하루 4시간만 수면을 취하며 현장을 누볐다. 농기계 판매 사업을 하던 시절 ‘워커맨’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왕성한 일 욕심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 스포츠맨 김용서 - 박지성과의 인연

김용서 시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수원을 ‘스포츠의 메카’로 표현할 만큼 그에게는 스포츠맨이라는 이미지가 더 따라붙는다.

특히 축구에 대한 열의는 아직도 20대 청년보다도 뜨겁다고 스스로 자신할 정도이다.

그런 김 시장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과의 인연은 박 선수가 세류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원시 축구협회장으로 재직했던 김 시장은 평소 유소년 축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박지성 선수는 바로 김 시장의 유소년 축구 프로그램 1기생이었다.

수원시에 중학교 축구팀이 없던 관계로 잠시 화성시 안용중학교로 진학했던 박지성을 보며 김 시장은 이후 수원시 초ㆍ중ㆍ고등학교 축구부 창단에 나섰고 박지성 선수는 마침내 수원공고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젠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박지성이지만, 아직도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수원시청 시장실을 찾아오는 관계가 됐고 현존하는 사람 이름을 딴 박지성 도로도 개통하게 됐다.

수원삼성 블루윙즈의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서포터즈석에서 10~20대의 젊은 서포터들과 응원을 펼치는 그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민선 3기 시장 - Happy 수원 만들기

2002년 민선3기 수원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시민과의 약속인 선거공약 100가지 가운데 98%의 달성을 기록한 시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수원시는 105개 분야에서 대내외기관으로부터 수상했으며, 2006년도에는 지방자치발전 대상에서 종합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는 시련과 고난, 남모를 눈물도 있었다.

도로공사를 저지하려는 어느 아주머니의 외침과 야간에 자택까지 와서 시위하는 주민들, 시장실을 찾아 고성으로 항의하는 시민들, 어느 부분 하나도 김 시장에게는 쉽지 않았다.

시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의 예산 확보를 위해 그는 행정자치부의 말단 직원에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일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자신의 체면을 염려하는 수행 공무원들에게 “내가 허리숙인다고 얼굴이 상하거나 내 정체성이 변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시장으로서의 체면은 빈 ‘형식’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김 시장은 수원의 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천만번이라도 고개를 숙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그는 취임 후 2005년까지 7천623억원에 이르는 국ㆍ도비를 확보해 시의 각종 사업과 현안 해결에 힘썼다.

또, 마음 한 구석에서는 수원천 복원사업을 위해 반백년을 살아온 670여 개의 천변상가 상인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수원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도 상인들과 가족들에게 안타깝고 미안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민선 3기 4년여 기간은 수원시의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고 김 시장은 강조한다.

그는 수원시민의 삶의 질이 향상 될 수 있도록 행정력이 집중돼야 하며 점점 다원화돼 가는 변화의 시대에 공직자 역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도시’를 위해 모든 삶의 철학을 쏟아 붓겠다는 김용서 시장은 벽돌 하나부터 차근차근 쌓는 마음으로 10년, 100년 이후 수원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김용서가 살아온 길

▲ 수원중ㆍ고등학교 졸업, 경기대 행정학과 재학
▲ 수원시의회 4ㆍ5ㆍ6대 의원
▲ 수원시의회 6대 의장
▲ 경기도 시ㆍ군의회 의장 협의회장(전)
▲ 수원시 문화원 이사(전)
▲ 수원시 축구협회장(전)
▲ 경기도 교육대학설립 추진위원회 상임이사(현)
▲ 수원시 장애인협회 수석고문(현)
▲ 수원중ㆍ고등학교 총동문회장(현)
▲ 자치단체 국제환경협의회 집행위원(현)
▲ 現 수원시장 (민선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