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근은 아직 푸른 기운이 도는 새벽, 독서실문을 열며 맞았던 새벽공기를 잊을 수 없다. 주어진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성격 때문에 업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 잠든 시간에도, 하루를 재촉하곤 했던 직장생활 역시 뇌리에 남아있다.
보자기 질끈 동여맨 책보따리가 가랑비에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한달음에 도착한 집에는 늘 일거리가 쌓여 있었다. 쇠죽통에 채워놓을 쇠꼴이며, 군불로 지필 삭정이들을 주워모으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이웃집 친척이 보내줬다는 도회지의 책이며 철 지난 신문은 어린 최영근의 눈을 사로잡았다.
▲ 성장을 위한 외로움을 딛고 …
그의 부모님은 어린시절 자신이 무언가를 읽고 있을 때만큼은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최영근은 향남초등학교와 발안중학교에서 줄곧 상위의 성적을 차지했다.
당시 그를 향한 기대는 제물포고등학교로의 진학으로 이어졌고 이때가 최영근에 있어 혼자가 아닌 동시에 혼자 극복해야 함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제물포고를 거쳐 건국대 행정학과에 진학한 최영근은 사랑하는 가족과 그에게 희망을 걸었던 고향, 시대에 대한 고민으로 많은 불면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최영근의 가슴 한 구석엔 공직으로의 진출이라는 계획이 여전히 떠나지 않았고 마침내 주경야독으로 잘 나가는 직장생활과 결별하게 된다.
‘행정고시 합격’. 고달픔과 고독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사건이 또다른 전환점이 됐다.

경기도청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기간 중 그는 ‘가정복지과장’ 시절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사회의 최소단위이면서 가장 튼튼해야 할 단위인 가정을 위해 많은 아이디어와 열정을 쏟았던 기억은 그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5월, 화성시장으로 취임한 그는, 취임 후 1년여 기간을 화성시의 안전과 복지, 연간 100억이 넘는 교육예산 배정과 더불어 CCTV 종합관제소, 지역아동센터 확대 등을 일궈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안전한 가정과 지역사회, 사회의 안전망이 기본 요건이라는 신념과 대한교육보험과 포철에서의 직장생활에서 얻은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그 밑그림을 그리는데 매진했다.
서울의 1.4배에 달하는 면적과 삼성 등 첨단 대기업, 10여 개의 대학교, 전국 최대 규모의 농수축산업이라는 산업토대에 제암리 만세터 등 정신문화유적, 제부도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춘 화성의 풍요를 완성하기 위해 그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 ■ 최영근 후보가 살아온 길 ▲ 제물포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