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 입문 27년 ‘수원 댄서의 순정’

[수원 사람] (사)대한댄스스포츠 코치협회 수원연수원장 강만식씨

“댄스요. 우리 인생은 물론 인류와 떼어낼 수 없는 문화죠”

댄스에 대해 묻자 어떤 망설임이나 의심없이 서슴지 않고 말하는 강만식(55) 씨.

그가 댄스를 시작한지 벌써 27년이 됐다. 군대를 전역하고도 평소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에 답답함을 느껴왔던 그는 가슴에 쌓여있던 열정을 토해내고 어눌한 말보다는 직접적인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 강만식씨는 댄스가 몸과 마음의 건강, 가족과 지인에게 있어 화합의 대명사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도록 노력한다고 말한다.
스텝 하나, 동작 하나 이렇게 배우기 시작하다보니 어느덧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무도계에선 유명한 무도인으로 알려졌다.

“군대를 전역했는데도 내성적인 성격이 고쳐지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당시 댄스를 하고 있던 지인을 통해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죠. 동작 하나하나를 배우다 보니 댄스에 빠져드는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불과 20여년전,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댄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좋게 그려지지 않았다. 뉴스나 신문, 매스컴 등에서 보도되는 것은 불륜이나 제비족 등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돼 대중에게 알려져 왔다.

상황이 이렇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담아 몸과 마음의 건강, 가족과 지인에게 있어 화합의 대명사로서 댄스가 대중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게 하고픈 의지가 생겼다.

“한마디로 안타까운 생각만 들었어요. 우리가 즐거울 땐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죠. 이런 것이 바로 댄스라고 생각해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형되는 것. 이것이 무용과 다른 점이고 우리 생활과 정서 속에서 잊히지 않을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바람과 노력 때문일까, 댄스가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양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리나라가 1988년 올림픽의 개최국으로 댄스스포츠 경연대회를 하게 되면서 였다.

그 후 댄스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무도인들의 노력으로 1990년 한국 아마추어 댄스스포츠협회 조직에 이어 현재는 강씨가 수원연수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대한댄스스포츠 코치협회 등 6개 단체가 활성화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등록된 무도학원은 1천여 개이며, 주요 언론기관 및 문화센터에서 댄스스포츠 강좌와 함께 최근에는 각 시군의 대학부설 교육원 등 공공기관이나 대학에서도 댄스스포츠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어 교양강좌로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렇듯 댄스가 활성화되면서 지금은 댄스스포츠의 교습은 물론 프로선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만식 원장은 “댄스가 양성화되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후배들이 자유롭고 더욱 깊게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인생을 바친 보람을 느낀다”며 “댄스스포츠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생활 속에서 깊이 자리잡는 문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