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특별히 한 거 없어요.”,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 너무 많으세요.” 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현경화(24ㆍ간호사) 씨.
포근한 성격만큼이나 동글한 얼굴에 후덕한 인상의 그녀. 그저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고픈 생각이 가슴 한쪽에 늘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던 고등학생 시절 방학을 맞아 마음이 맞는 친구 몇몇과 ‘음성 꽃동네’를 찾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놀 궁리로 바쁜 황금 같은 방학이 되자마자 물어물어 찾아나선 첫 봉사활동. 어여쁘고 착한 마음만 가득 담은 꿈 많던 여고생 시절 그저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만 생각했던 철없던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린다.
간만에 나선 봉사니만큼 할머니들을 위해 더 친절하고, 더 열심히 일하자고 굳은 다짐을 했건만 수녀님 한분이 나직한 목소리로 “너무 웃지도, 정을 주지도, 말을 걸지도 마라!”며 봉사수칙을 강조하실 때 충격을 받았다. “아니 우리보고 봉사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하며 속으로 불평을 하기도 했다.
학교에선 ‘수화부’ 동아리 반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추진해 동아리 친구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때 탁아소며 양로원 등 여러 곳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수녀님의 그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이 그리운 아이들은 조금만 잘해줘도 눈치가 빨라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눈시울을 적시며 돌아서는 어르신의 허탈한 모습들도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봉사자들이야 가고나면 그뿐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쌓인 정을 못 잊어 몹시 힘겨워 했던 것이다.
몇 번의 가슴앓이를 겪으면서 수녀님의 그 말씀이 가슴속에 차분히 자리 잡았다. 아마도 그 말씀이 없었더라면 너무 힘들어 봉사활동을 접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녀.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봉사활동상을 받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상 받는 게 좋아서 한 거 같기도 해요”라며 천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싶은 그녀는 지금 화서동 서울MS정형외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혼자 사시는 동네 할머니를 찾아 집 청소며 빨래, 궂은 일을 소리 없이 해놓고 간다. 좀 더 짬이 나면 말벗도 해 드린다. 처음엔 낯선 사람의 도움을 경계하던 할머니들도 한결같고 부담 없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차츰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학생 때는 반대했던 어머니도 이제는 김치며 먹을거리를 먼저 챙겨주시는 든든한 동반자가 됐다.
어릴 적 몸이 약하시던 어머니 대신 할머니 손에서 자란 현 씨는 그래서인지 할머니에게 더 애정이 간다. 어느새 사정이 딱한 할머니를 발견하면 현 씨에게 귀띔해줄 정도로 동네엔 소문이 났다.
그러나 괜히 드러나 소문만 요란해질까를 걱정하는 그녀, 넉넉지는 않지만 월급을 뚝 떼어 매달 돈을 보내고, 아프리카 난민촌에 가 간호봉사를 하는 참 예쁜 마음씨를 가진 신세대다. 조용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소리 없이 나타나는 믿음직한 천사,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이 따뜻하고 포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