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산문제 해소책 일환으로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 캠페인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정작 지난달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승용차요일제 제외대상에서는 임산부가 포함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출입에 불편을 겪은 임산부들은 "정부가 진정 임산부를 배려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곳곳에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 만삭 임산부도 "차 돌려라"

수원중부경찰서에 위치한 경기도교통정보센터에서 일하는 모 라디오 교통리포터 남희선(35ㆍ여ㆍ수원 권선구)씨는 차량번호 끝자리가 '5'여서 지난달 공공기관 승용차요일제가 시작된 이후 매주 금요일 출근길이 두렵다.

임신 9개월로 접어들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만 이 경찰서는 배가 남산만큼 불러온 남씨의 차량에도 승용차 요일제를 '칼 같이'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씨는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에 문의해 봐도 장애인차량이나 경차가 아니면 제외되지 않는다는 기계적인 답변 뿐이었다"며 "나야 다음달에 아이를 낳으면 그만이지만 이래서야 누가 아이를 맘 놓고 갖겠느냐"고 성토했다.

비슷한 일을 겪었던 약사 이재란(31ㆍ여ㆍ서울 영등포구)씨도 "국가가 아이를 많이 낳으라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못해주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난센스"라고 질타했다.

◇복지부 따로, 산자부 따로 … 부처간 엇박자

고유가 대책으로 제시된 공공기관 승용차요일제의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는 800㏄ 이하 경차, 장애인승용차 등을 제외한 승용차 출입을 금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전국 공공기관에 하달했다.

각 공공기관은 이를 기초로 자체 에너지추진위원회를 개최해 적용 차량을 재량껏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기관이 산자부의 가이드라인을 사실상의 '지시'로 해석해 적용에 유연성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남희선씨의 사례와 관련해 기자가 직접 경기지방경찰청에 문의해본 결과, 담당자는 "내려온 지침에 따른 것이라 우리로선 딱히 조절해 볼 여지가 없다"고 답변했다.

산자부 김학도 에너지관리팀장은 "차량이 등록된 장애인차와 달리 임산부가 탄 차량은 식별이 어려워 예외 조항에 명문화시키기에 어려움이 있어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늘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 서울YWCA 등과 함께 임산부 배려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도 "산자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요일제에 임산부를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다"고 밝혀 부처별 정책추진에 유기적 협조가 부족하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 늘려야

임산부 배려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YWCA 민혜경씨는 "임산부가 사회적 약자라는 데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며 "일단 임산부들이 대중교통부터 맘놓고 탈 수 있도록 임산부 뱃지 제작ㆍ보급 운동부터 벌여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97년 제정된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법률에는 장애인 관련조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뿐 임산부에 대한 조항은 선언적 조항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이 법률에 따라 설치된 장애인주차장에는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달리 노인과 임산부는 주차할 수 없으며 등록된 장애인차량만 주차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원YWCA 이귀선 사무총장은 "여성 직장인들의 경우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출산ㆍ육아휴직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임산부들에 대한 크고 작은 실질적인 배려 없이는 정부의 저출산 해소 대책도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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