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댄스 문화를 포함한다’ 재즈댄스가 내포하고 있는 한 갈래 정의다.
이 명쾌하고 한번에 쏙 알아들을 수 있는 의미를 담은 재즈댄스는 최근 불어닥친 ‘웰빙’과 ‘다이어트’ 열풍으로 여성은 물론 남성들 사이에서 어느 곳에서든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다.

불혹의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라곤 느껴지지 않는 몸매와 체력을 과시하며 수원지역의 여러 문화센터는 물론 의왕, 분당 등 경기도 지역의 내로라하는 센터에서 명강사로 불리는 배남은 씨. 이미 30여명의 제자들이 각 문화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할 만큼 재즈댄스계의 거물(?)이 돼버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수원 세류초등학교 2학년부터 수원여중ㆍ여고 시절까지 몽땅 체조란 것에 푹 빠져 살며, 한때는 경기도 대표로 전국 규모의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체조 유망주였다.
이런 그가 운동선수들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한국체육대학 진학을 앞두고 새로운 자아발견을 위해 선수에서 체육학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생각을 달리하니 그의 생활은 180도 변했다. 평소 감추려고만 했던 운동선수 생활도 장점이 되버렸고 어느 일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첫번째 변화다.
대학졸업 후 에어로빅 레슨 강사로 활동하다 2년 후인 1990년 결혼을 했다. 4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 옷가게를 하면서 솔직히 부족한 건 없었지만, 이따금 가게 앞을 지나는 무용학원 차량을 보노라면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는 자신을 느끼게 된 후부터 두번째 변화가 찾아왔다.
“가게 앞에 무용학원 차량이 지나면 머릿 속이 멍해졌어요. 그 때는 체조를 포기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선택이 달랐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었죠. 옷가게를 그만두고 재즈댄스를 알게 됐죠”
결혼 12년만의 일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2003년 한양대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따내고 마음 속에 남았던 열정을 다시 찾은 그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재즈댄스를 처음 접했을 때만해도 많은 사람이 알지 못했고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가 처음 강사로 활동한 곳이 수원청소년문화센터. 당시 야심차게 시작한 그였지만 7명이던 수강생은 오히려 2명으로 줄어들었다.
프로그램의 존폐를 두고 망설였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바로 세번째 변화였다.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타성에 젖은 모습을 보이곤 하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굴 가르치거나 설득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가 겪어온 3가지 변화. 그 순간의 선택들이 50여 종류의 웰빙 재즈 댄스를 만들어냈으며, ‘배남은 재즈댄스’ 일명 B&I 재즈댄스가 여러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좌를 개설하는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