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살고 싶어요"
수원시 화서주공아파트 철거민인 박모(38.여)씨의 딸 네살배기 민해(가명)의 집은 수원시청 주차장과 사람들이 오가는 정문 앞 인도다.
다른 또래 아이처럼 어린이집을 다니며 한창 귀엽게 놀고 있어야 할 민해에게 이 곳은 이불 깔고 잠을 자고,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하루종일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놀이터이자 보금자리다.
아빠는 이삿짐센터에 일용직으로 취직해 센터에서 일을 하고 잠도 거기서 자서 잘 만나지 못한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지난 29일 밤에는 이 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다른 철거민 가족의 오빠(6살), 언니(14살)와 함께 비를 피해 잠시 보금자리를 떠나 인근 권선 3지구 철거민회관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민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청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세수하는 것. 그 다음 엄마와 철거민 아저씨, 아줌마와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일이다.
오빠와 언니가 아침 밥을 먹고 각자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고 나면 민해는 혼자 남아 엄마.철거민들과 함께 하루종일 보금자리를 지킨다.
언제 구청 공무원과 용역직원들이 와서 이불과 밥그릇 등 살림살이가 실려 있는 트럭을 견인하고 민해와 다른 철거민 가족들이 함께 잠을 자는 천막을 철거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해가 시청 앞에서 생활하게 된 것은 지난 1월 말 엄마와 함께 살던 수원시 팔달구 화서주공아파트가 재건축 되면서 강제로 철거당한 뒤부터.
아파트 주인들이 만든 재건축조합은 민해네 가족 등 세입자들이 집을 내주지 않자 명도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강제퇴거를 실시했고 이 바람에 세입자들은 하루 아침에 주거지를 잃고 말았다.
또 200만~500만원의 아파트 보증금도 소송 비용을 대느라 거의 다 날려 버렸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된 민해네 식구는 같은 처지에 있던 8세대 15명 주민과 함께 지난 2월 초부터 시청 정문 옆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살기 시작했다.
민해의 어머니 박씨를 비롯한 철거민들은 '전국철거민연합 화서주공철거민 대책위'를 만든 뒤 "공원이나 시유지에 이주해 살 수 있도록 이주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시에 요구했다.
그러나 시(市)는 "민간이 조합을 구성해 추진한 아파트 재건축 문제에 시가 개입해 보상해 줄 수는 없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인 만큼 민법으로 해결하라"며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철거민들은 매일 시청 앞에 모여 방송차량을 이용해 소음시위를 벌였으며 참다 못한 시청도 이들이 살고 있는 천막을 철거하고 시청 앞에 주차해 놓은 차량을 견인하는 등 양측간의 힘겨루기는 계속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용역직원이 엄마와 철거민들을 끌어내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민해는 한 번도 빠짐없이 눈앞에서 직접 바라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비 한 방울 피할 데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잠을 자고, 제대로 편히 앉아 밥을 먹지 못하고, 엄마와 용역직원 간의 거친 몸싸움을 보는 일이 31일로 223일째다.
예전엔 밝고 명랑했던 민해는 요즘 들어 잘 웃지도 않고 아저씨들만 보면 용역직원이라며 무서워 한다.
현장에서 만난 민해의 어머니는 "거액의 보상금을 노리고 하는 짓이라는 주위의 조소어린 비난과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시청의 무관심 보다도 더 가슴 아픈 것은 민해가 스트레스를 받아 배에 가스가 차고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시청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어린 아이가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철거민들과 시청 측의 입장이 너무나 상반돼 이주대책과 관련한 분쟁은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