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세어가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리운 이들의 편지를 기다리는 모습은 속도와 편리함으로 무장한 휴대전화와 전자메일 등에 밀려 구식이 된지 오래다.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1979년 5월부터 고색동, 오목천동 지역 담당 우편집배원 생활을 시작해 지난해 3월 집배 업무 총괄을 맡게 된 집배실 김규환 실장은 우편 내용물이 변화하면서 우편물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1970~80년대만 해도 고맙다거나 수고한다면서 시원한 냉수나 음료수를 대접하는 분들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아예 문도 안 열어주고 문전박대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과거엔 그리운 이들의 마음과 소식이 담겼던 정감어린 우편물이 이젠 각종 공과금이나 요금 고지서, 법원 등기나 내용 증명이 주류를 이뤄 ‘초대받지 않은 손님’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김 실장은 집배원들이 반드시 3번 방문해야 하는 법원 등기 우편물의 경우 수령 당사자이면서도 본인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나오지 않고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경우를 종종 당한다고 한다.
그가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역시 세월이 흐르며 우리네 인심도 변화함을 느끼게 해준다. 부모님에게 들킬까봐 대문 앞에 나와 입대한 애인의 편지를 기다리던 아가씨, 19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불던 때 이역만리 타향의 아버지 혹은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 편지를 전하다 빈집에 화재가 날 뻔한 일을 막았던 일들은 김 실장에게 아련한 향수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부인 몰래 사용한 신용카드 고지서를 본인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며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녁 7시 이후에 우편물 배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진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는 이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것은 당연지사. 김규환 실장의 오후는 우편물 배달과 관련한 고객의 민원에 대비해 언제나 출동 대기 상태이다.
보통 집배업무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5시에 배달을 마치고 다음 날 배달해야 할 우편물 분리 작업까지 마치면 저녁 8시에 퇴근하지만 각종 공과금 고지서로 우편물이 폭증하는 매달 16일에서 25일 사이나, 선거철의 경우 밤 10시를 넘길 때도 많다. 이렇게 고된 집배업무지만 이 일에 보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터.
“1983년 결혼식을 올릴 당시 배달 지역 주민들이 하객으로 식장을 가득 메웠을 때 집배원 일을 열심히 한 보람을 느꼈었죠.”
김 실장은 수원에서 자신보다 오랫동안 집배원 생활을 한 사람은 없을 거라며 우체국이 보험업무를 시작한 이래로 1983년에 수원지역에서 우체국 보험 모집왕을 차지한 적도 있다고 귀띔한다.(보험설계사가 없었던 당시 집배원이 보험 모집 업무도 담당했다.)
이렇게 집배원 일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정열과 시간을 바쳐 일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정에 신경을 못 쓴 부분이 늘 마음에 걸린다는 김 실장은 선배로서 후배의 귀감이 되고 다양해진 고객 요구에 맞춰 배달사고나 안전사고 없이 집배업무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잊혀가는 동요의 가사처럼 ‘큰 가방 메고서’ 도보로, 자전거로 험한 길을 왕래했던 집배원의 모습과 우편물에 얽힌 다사다난한 이웃의 정감어린 풍경은 사라졌지만, 김규환 실장의 정성스러운 손길은 변함없이 가정마다 배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