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보다 더 어렵다는 요즘처럼 이 ‘사회복지’ 분야가 부담스럽던 때가 또 있을까. 저마다 살기 어렵다고 하니 이웃을 뒤돌아보는 여유도 짬도 새삼스럽기만 하다.
흔히 편할 것 같은 공무원 생활, “다른 직종은 모르겠지만 일단 공무원으로서의 사회복지사 역할은 쉬운 말로 막노동에 버금간다”는 인계동사무소 김춘녀(45)ㆍ전재현(35)씨.
김씨는 사회복지사로 수원시 구석구석을 찾아 소외된 이웃의 엄마로, 딸로, 누나로 살아온지가 어느새 15년이 됐다.
복지사의 꿈을 이루고자 편한 직장생활을 뒤로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첫 둥지인 인계동에서만 4년여. 신참 사회복지사 전씨도 하루 24시간 동분서주다.
한 사람당 관리하는 수급자만도 300명이 훌쩍, 하루에도 너덧 명씩 찾아오는 주민들 수급 상담하랴, 현장 방문해 한 사람 한사람 챙기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고된 일상의 끈을 꼭 쥐고는 자신을 기다리는 소외된 이웃의 손을 놓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으니 시간은 어느덧 1997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평소 자주 찾아와 얘기를 건네시던 할아버지 한 분. 웬일인지 한동안 소식이 없어 집으로 찾아 나섰다. ‘혹시나’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 주인 아줌마와 문을 따고 들어가니 이미 심장엔 약간의 온기만이 남았을 뿐이다.
웬만한 남정네들도 기겁하고 달아났을 상황임에도 변으로 뒤범벅된 이부자리며, 할아버지의 몸을 깨끗이 씻겨 병원으로 옮겼다. 두려움과 역겨움보다는 쓸쓸히 인생을 마감한 할아버지가 너무도 안쓰러워 마지막 모습만은 깨끗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다는 김씨. “수소문 끝에 어렵게 6촌을 찾아 유골을 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며 그때의 기억을 들춘다.
전씨의 기억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암 말기에 있는 할머니 한 분을 주민의 신고로 급히 병원으로 모셨던 일. 수입이 변변치 않아 자포자기한 아들은 아픈 어머니에게 더 이상 어쩌지를 못한 채 그저 병마와 씨름하며 말기까지 온 할머니.
“비록 병원에서 3일을 넘기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해 드려 다행”이라면서도 “조금만 더 일찍 발견해 덜 고통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또 한 번 쓸어내린다.
사실 기억나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건강이 악화돼 죽음을 코앞에 둔 아저씨 한분께는 연락이 두절된 딸을 어렵사리 찾아 드렸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딸은 위독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그동안 쌓인 감정을 다 풀어내고 화해했던 일도 참 다행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사회복지분야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수급자를 제대로 챙기기 위해선 그래도 아쉬움이 많다. 다른 건 몰라도 “한 사람당 관리하는 수급자가 150명에서 200명 정도만 되어도 한 분 한분 좀 더 배려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씨의 바람이 안스럽다. 15명도 아닌 150명이라니 말이다.
오히려 사회복지사로 자신들이 도움을 주었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식구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임을 알게 됐다”는 김씨와 전씨. 물끄러미 바라본 그들의 얼굴은 참 뽀얗고 해맑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