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뒤늦은 컴퓨터 공부에 열심인 30대 중반의 김지호씨. 장애를 들어낸다는 게 조심스러워 취재를 꺼리지나 않을까 했던 염려가 금세 무색하게 됐다.
“이렇게 저를 찾아주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저는 원래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했거든요”.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빠듯한 생계를 꾸리시던 어머니를 기다리며 홀로 잠들었다가 생긴 일이다. 영영 깨어나지 못할 뻔했던 그 날을 “저 혼자 있을 때 사고가 나서 그래도 참 다행”이었다며 감사해 했다.
유난히 눈을 동그랗게 뜨는 김씨는 사실 모든 사물이 2개로 보인다. 가스중독으로 시력에도 문제가 생겨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지만 심한 난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화성시 병점 주공6단지에 거주하는 그는 요즘 관리사무소가 운영하는 컴퓨터기초반에서 ‘질문 총각’으로 통한다. 이해가 잘 안된다 싶으면 선생님을 큰 소리로 부른다. 다른 사람들의 진도를 위해 주의를 받기는 하지만 수업시간이 끝나고 개인교습을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의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아파트 놀이터도 그가 자주 찾는 곳. 놀이터에서 초등학생들과 ‘얼음땡’이며 ‘미리미리미리뽕’등 쎄쎄쎄 놀이를 하며 논다.
“제가 다 큰 어른이지만 아이들처럼 노는 게 참 행복”하다는 김씨다. 잘 놀던 아이들이 문득 “엄마가 아저씨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지 말래요” 하기도 한다.
또 가끔은 그를 유괴범으로 생각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많다. 그는 엄마들의 반응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 받지도 않았다.
워낙 밝은 사람이었던 그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갑자기 갈 곳도 할 것도 없어지자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어렵게 새 삶을 얻었음에도 또 다시 홀로 남겨져야 하는 일상의 반복으로,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신세를 보면서 점점 삶의 의미를 잃어갔다.
한결같이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와 ‘괜찮아, 우리 지호 괜찮아!’하며 등을 토닥이고 힘껏 안아주던 누나가 있었기에 우울증의 터널을 건널 수 있었다.
전셋집이지만 옛날 보다는 형편이 나아졌다. 집근처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는 새벽 4시반이면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에 11시간씩 일하시는 우리 엄마는 참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에요”. ‘어머니’라는 화두 한마디에 줄줄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저 때문에 많이 속 상하실텐데…. 저를 참 아껴주시는 우리 엄마!”,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제가 부족해서 미안해요. 노력할게요. 우리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요!”라며 쉬지 않고 말한다.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정신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는 김씨. 나중에 컴퓨터 강사가 되면 또 한 번 인터뷰를 하자고 약속하며 나서는 길. 목례대신 ‘빠이빠이’ 손짓에 해맑은 미소를 담아 건네는 그의 인사가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