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자락을 친환경 유기농단지로 만들어 농민과 도시민이 상생하는 길을 찾겠습니다"
인구 100만의 대도시 수원의 허파 노릇을 하고 있는 광교산 자락에서 농민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손잡고 수년째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하며 도시 근교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수원시 북쪽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상광교동과 하광교동 일대는 수원 도심에서 불과 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동시에 묶여 있어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거나 등산객을 상대로 음식점을 운영해 생계를 잇고 있다.
하광교동 농민 이찬성(53)씨와 수원만들기협의회, 수원KYC, 수원환경운동센터 등 시민단체와의 첫 만남은 지난 20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유기농 단지를 함께 꿈꾸는 같은 배를 탄 식구가 됐지만 시민단체들은 처음에 이씨를 비롯한 광교동 주민들로부터 싸늘한 외면을 당해야 했다.
수십년간 각종 제한에 시달리며 막대한 재산권의 손해를 보며 박탈감에 시달려온 주민들에게 광교산 자락의 반딧불이를 살리자고 마을에 들어온 시민단체 회원들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던 것이다.
이찬성씨는 "지금이야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반딧불이 살리기 토론회인가에서 처음 만났을 땐 반가울 리가 있었겠어요. 반딧불이고 뭐고 우리가 죽을 판이었는데…."라며 옛 생각에 웃음지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도 적잖은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수원만들기협의회 이근호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환경운동을 하러 찾아간 우리를 불신하는 데 충격받았죠. 환경 뿐만 아니라 그 곳에 사는 주민들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소비자들이 농민으로부터 농산물을 직구매하는 생협운동에 관심이 있던 이 국장은 얼마 뒤 마을 통장일을 보던 이찬성씨를 찾아가 시민단체를 통해 친환경 배추를 팔아주겠다고 제안했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이찬성씨도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이들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고 이들의 끈끈한 관계는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햇수로 6년의 세월이 지난 동안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4년 전부턴 아예 광교동에 들어와 이씨의 밭 800여평을 주말농장으로 빌려 밭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올봄에는 언론에도 소개되면서 일반인에게도 인기리에 분양되기도 했다.
또한 '쌀을 모두 책임지고 팔아주겠다'는 시민단체의 제안에 고무된 이찬성씨는 지난해부터 2년째 하광교동의 다랑논 1천평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는 전혀 쓰지 않는 대신 천연 퇴비만을 쓰는 유기농 벼농사도 짓고 있다.
손이 많이 가는 유기농 벼농사를 돕기 위해 시민단체 회원들은 많을 때는 하루 30~40명씩 우르르 몰려가 두어 시간 만에 논에 웃자란 잡초를 순식간에 제거하고 돌아가는 놀라운 '기동력'도 선보여 이씨의 일손을 크게 덜어줬다.
이씨는 "유기농으로 벼를 재배하는 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에요. 혼자선 도저히 할 수 없거든요. 이 사람들 도움이 없었으면 못 하는 거죠. 그 뿐인가요. 시민단체가 쌀을 높은 값에 모두 사가 팔아주니까 큰 돈은 아니어도 전보다 소득도 높아졌죠"라고 말했다.
이씨와 시민단체 회원들은 점차 큰 꿈을 꾸고 있다.
농민들에게는 유기농 농사를 통해 관행농업에 비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도시인에게는 좋은 교육과 여가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아직까지 대부분 농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관망하고 계세요. 하지만 유기농법이 농민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걸 보여드리면 많은 분이 동참하실 겁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들은 다음달 광교동에 가칭 '광교산 지역센터'라는 방문자센터를 열고 이런 꿈을 실현할 보금자리로 삼을 예정이다.
여기서 각 시민단체들은 나름의 장기를 살려 광교산 생태체험, 짚풀ㆍ목공예, 천연염색, 두부ㆍ묵ㆍ메주 만들기 등의 풍성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광교산을 찾는 시민들에게 유익한 체험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사무국장은 "수원의 마지막 녹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민들에게 중요한 생태공간인 광교산을 살리면서도 그 곳에 사는 농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찬성씨와 시민단체 회원들은 22일 낮 메뚜기가 지천인 이씨의 다랑논에서 유기농쌀과 논두렁에 심은 콩을 함께 거둬들인 뒤 조촐한 잔치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