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가 화성행궁앞 명당수 물길까지 바꿨다

민족정기 말살 위해 하천 석축폭도 줄여 … 화성사업소 확인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수원 화성행궁(華城行宮) 앞을 흐르던 명당수의 물길과 유속을 바꾸고 하천 석축의 폭도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사업소는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화성행궁 앞 6천600여 평 부지에 대해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한 결과, 화성행궁 앞을 흐르던 명당수의 호안석축과 정조시대에 지어졌던 신풍교의 지짓돌 일부를 최근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명당수는 팔달산에서 내려와 화성행궁 앞을 지나 수원천으로 흐르던 하천이었으나 30여 년 전 수원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없어졌으며 호안석축은 돌을 맞물려 쌓아 만든 석축을 말한다.

화성사업소는 명당수의 호안석축이 북측은 조선의 전통적인 토목방식인 평돌쌓기 방식으로 축조된 반면 남측은 삼각형이나 마름모 형태로 돌을 쌓는 일본의 전통적인 견치식 공법으로 축조된 것을 확인했다.

또 명당수의 북측-신풍교까지 70여m 구간은 4~5m 폭으로 유속이 일정하지만 남측 30여m 구간은 호안석축의 위치를 '화성성역의궤(18세기에 축조된 수원 화성의 건축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건축 보고서)'에 나타난 원래 지점보다 2~3m가량 화성행궁 쪽으로 가까운 지점에 재축조했고, 폭도 1.2~2m로 급격히 좁아져 유속까지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화성사업소 김준혁(38) 학예연구사는 "일제가 지난 1911년 '조선궁ㆍ읍성 철거시행령'에 따라 화성행궁 파괴작업을 하면서 수원의 기운을 약화시키려고 명당수의 물길을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성사업소는 일제의 의해 변형되고 왜곡된 명당수와 신풍교를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그대로 복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