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교도소 가는 길인데요. 볼일 보고 대여섯시쯤 볼까요?”
한국갱생보호공단(이하 갱보) 산하 여성 출소자들의 안식처인 삼미(三美)생활관 안팎 살림으로 눈코 뜰새 없는 한순옥(35) 계장.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건 순간에도 그녀는 교도소로 출장을 가던 길이었다. 출소 한 두 달을 남겨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출소 후 생활 상담을 해 주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은 삼미 생활관으로 데려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얼러서 사회생활과 가족생활로 복귀시키는 일.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한 계장과 갱보 식구들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하는 진짜 이유다.
“이젠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되셨는데…”라며 기억의 창을 더듬는 그녀는 청송감호소에 두 번이나 수감됐다가 삼미생활관 개소와 함께 인연이 된 아주머니 한 분을 떠올렸다. 당시 40대인 그녀는 이미 절도 8범으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주변 여건상 재범의 가능성이 컸다.
“지금에 비하면 프로그램이 많이 미숙했지만, 감사하게도 잘 따라와 주셨어요. 열심히 직장 생활하는 모습에 내심 고맙고 감사했는데, 나중엔 삼미 근처로 이사와 명절때마다 송편이며, 떡국, 떡 등을 만들어 오세요. 여기가 친정 같데요”라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
심리상담에서 직업재활과 알선, 의료지원, 동사무소 일까지, 도와주고 챙겨줄 일은 끝이 없다.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한 노력과 열정과 정성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6개월 길게는 1년여의 삼미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향할 땐 매번 근심과 걱정이 앞선다.
“삼미 식구들이 사회에서 특별한 선공을 거둘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평범한 생활인으로 그 소중함을 지켜내는 게 가장 큰 성공 아닐까요?” 라는 한 계장.
고작 3명의 갱보 직원이 20명의 삼미 식구를 챙기고, 나흘에 한번은 당직을 서야 하고, 어린 두 아들을 당직실로 데려와 잠을 청해야 했음에도, 그저 모든 상황을 감사하게 품어 안는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한씨. 이렇게 열정을 쏟는 이유를 물으니 정작 자신도 그 에너지의 근원을 모르겠단다.
1988년, 대학 1학년 때 소년원으로 야학봉사를 나간 게 첫 인연인데,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즐거웠다.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한 갱보 생활도 어느새 11년.
“개개의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듯, 우연한 교통사고로도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라는 그녀는 “이제 우리사회가 좀 더 포용력 있게 상처난 가슴을 보듬어 안을 수 있었으면 한다”며 속 깊은 미소를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