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라고 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허위사실을 적시해야만 처벌받는 죄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적시하여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 형법에는 엄연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제 1항을 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 형법 제 310조에 따라 진실한 사실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시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좀 애매하지 않은가? 사실을 적시하여도 명예훼손이 된다고 하니 우리는 그 명예의 침해 가능성이 아예 없도록 당사자에게 도움 되는 사실만 적시를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진실한 사실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시한 경우에는 죄가 성립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적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데 있었음을 사법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또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 함은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을 위하여 적시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둘 다 꾀했을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해자들이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피해자들이다.

 예를 몇 개 들어본다. 의료사고를 당한 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거나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 어김없이 의사들은 ‘명예훼손죄’와 ‘영업방해죄’로 고소를 한다. 허위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명예가 침해되었다고 소(訴)를 제기하면 환자(피해자)는 상당한 압박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비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였다 하더라도 현 우리나라 사법부는 해당 병원의 명예침해를 더 중시 여겨 대부분 유죄를 선고한다. 병원 실명 홍보 글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병원 실명 의료사고 사실 게재는 문제가 있다고 하니 의료서비스를 받는 주체인 환자들은 좋은 병원을 권유받을 권리는 있어도 나쁜 병원을 거를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조금만 잘못하면 전과자가 되기 십상이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의료사고를 일으켰거나 의료과실 행위를 반복해오고 있는 의료인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판사들도 한 쪽으로 기울어진, 불합리한 법 적용임을 인지하고는 있는지 소액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현실을 들 수 있다. 2018년에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저명 인사를 필두로 자신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공의 장을 통해 알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얼마 못가 위축되고 말았다. 원인은 성범죄 가해자들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악용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속으로 끙끙 앓다가 비로소 용기를 내어 성폭력 피해사실을 SNS나 언론매체에 공개해 봐도 사회적 비난이 따라오고 가해자로부터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공격을 받고 마니 오히려 2차 피해를 입고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아져버렸다.

 실제로, 2018년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 따르면 가해자 측에 의해 고소당한 성폭력 피해자의 40% 가량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범죄 가해자가 성범죄 피해자를 선 고소하여 압박하고 합의를 유도해내는 (처벌을 면하는) 악법조항으로 적용되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익제보자들은 또 어떤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하는 예비 공익제보자들은 많지만 선뜻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은 드물다. 공익신고 대상자는 공익 침해자를 대표하는 대표자, 조사 기관, 수사 기관, 국민권익위원회, 국회의원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 외 사람들에게 제보할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있으므로 부담 없이 공익제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부 고발을 할 경우 곧 조직을 배신한 행위로 인식해버리는 후진적 문화가 아직도 팽배해있기 때문에 직접 소속 기관의 대표자에게 신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울러 수사 기관에 조사 및 수사를 의뢰하는 것은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공익침해자가 증거 인멸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어지기 때문에 신속성의 차원에서 언론사에 먼저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업의 불법비리 행위와 관련 있는 법률들이 공익신고 대상 법률에서 모두 제외되어 차명계좌, 분식회계, 배임․횡령 등 기업의 부패 행위에 대한 공익신고는 보호대상이 되지 못하므로 이러한 불법비리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지인에게 알리거나 시민단체 또는 언론사에 제보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비리 당사자의 대표가 공익신고자를 명예훼손이라는 무기로 손쉽게 입막음하거나 처벌받게 해왔으나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된다면 이러한 악습행위는 원천 차단될 수 있다.

 지금까지 기술한 바와 같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사회적 약자와 범죄 피해자 및 공익 제보자를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역으로 법을 지키지 않거나 법을 악용하는 이들의 명예를 보호해주는 수단으로 전락된 지 오래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법익의 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규정이 위헌인지의 여부를 심사 중이다. 합헌을 주장하는 측은 진실을 밝히는 행위도 명예에 치명적 훼손을 가할 수 있으며 아직 우리 사회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이므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변론한다. 

 그러나 명예라는 개념은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그 침해 유무와 침해 정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하며, 설령 판단을 한다고 하여도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어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고위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 적용이 될 소지가 크다. 또한 성실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법적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자와 타인의 법익에 중대한 침해를 가한 자의 능히 실추되어 마땅한 명예까지 보호해주기 위해 일반 시민의 진실을 말할 권리를 사전에 제약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가치가 정녕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은 가장 큰 문제인 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만으로도 위헌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잃게 만들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까지 박탈하여 헌법정신을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진실한 사실을 널리 알리거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라는 악법조항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제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 왔다. 

 상위법인 헌법의 가치를 하위법인 형법이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진실한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각종 부조리와 비리가 묻히게 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끼리의 연대는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국 정의실현과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만다.

 게다가 명백한 명예법익의 훼손이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중대한 침해가 없어도 진실을 밝히는 행위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를 할 수 있는 현 사법시스템은  ‘묻지 마 고소’를 남발하게 만들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국가행정력을 낭비시키고 있으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면 주요 선진국은 명예훼손 행위를 어떻게 처벌하고 있을까? 대부분 허위사실 적시에만 명예훼손을 적용하고 있고 아예 명예훼손죄 자체가 없는 나라도 많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규정이 없고 미국은 현재 4개 주(매사추세츠 주, 미네소타 주, 몬태나 주, 뉴햄프셔 주)에서만 명예훼손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나머지 46개 주는 오래전에 명예훼손죄를 폐지했고 명예훼손 분쟁은 오로지 민사 손해배상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영국은 사인 간 명예훼손죄를 10년 전에 폐지했으며 일본은 명예훼손죄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친고죄이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 처벌규정이 있긴 하지만 공익적인 목적으로 적시했다는 것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고 적시 내용이 진실이기만 하면 처벌을 면한다.

 2011년 3월 유엔인권위원회는 한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이어 2015년 11월에는 유엔 산하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가 동일한 권고를 해왔다. 인권 선진국을 본받고 세계적인 추세에 합류하라는 뜻이다. 

 다음은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입장문이다.

(1)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범죄로 처벌하여서는 아니 된다.
(2) 허위의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형벌로 처벌하여서는 아니 된다.
(3) 정부에 대한 비판 또는 의견표명을 한 개인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여서는 아니 된다. 
(4) 사실 적시 여부를 떠나 모든 형태의 명예훼손에 대한 범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앞의 장황한 예시와 설명을 이해 못하신 분이라면 이 4개의 입장문만 읽어보시라.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명쾌한 감이 올 것이다.

 이제야말로 실로 오랫동안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억압하는 데 일조해 온 구시대적 유물(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릴 때다.

 완전폐지만이 유일한 답이나 혹 완전폐지가 어렵다면 사생활의 비밀 누출로 인하여 인격권에 침해를 입은 경우로만 한정하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법조항 폐지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과 사단법인 ‘오픈넷’ 회원들의 성토 글을 인용하며 본 글을 마친다.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훼손되는 명예가 과연 진정한 명예인가? 과장된 평판이나 헛된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정의로운 결과인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법이고 우리 사회의 감시와 고발 기능을 마비시키는 악법이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