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14)] 나이가 벼슬?

정준성 논설실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기로 유명하다.

특히 낯선 사람과 싸우다 밀리기라도 하면 칼은 더욱 날이 선다.

급기야 “어린 것이, 너 몇 살이야”라고 윽박지름으로 이어진다.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경우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훈계나 트집을 잡을 때는 더하다.

따라서 전 연령층에 걸쳐 나이는 어떤 곤란(困難)한 문제에서 벗어나는 상투적 수단으로 인식된 지 꽤 오래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나이 따지기'는 정도가 심하다.

유독 노인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것도 특징이다.

개중에는 무턱 대고 나이를 내세워 무조건 어른 대접을 요구하는 노년층도 많다.

때문에 요즘 사회 곳곳에서 50대 이상 연령층과 젊은이 사이에 세대간 갈등이 부쩍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 및 노인과 관련한 혐오성 신조어도 속속 등장했다.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꼰대'는 기본이고, ‘나이가 벼슬인 나라’란 자조 섞인 비아냥은 보통이 됐다.

‘나 때는 말이야’의 준말 ‘라떼’, 나이를 벼슬처럼 여긴다는 '노슬아치(노인벼슬아치)', 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을 칭하는 '틀딱충', 노인과 벌레를 합친 '노인충' 등 혐오감 섞인 속어들도 있다.
 
나이와 이용 실적 점수를 뜻하는 '마일리지'를 합친 '나일리지'도 있다.

나이를 앞세워 우대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칭하는 부정적인 뜻이 담긴 의미로 쓰인다.

나이가 많다고 무턱대고 어른 대접을 요구하는 일부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인식. 사회학자들은 그 원인을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미풍양속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됐다고도 말한다.

장유유서는 ‘맹자’에 나오는 말로 어른과 아이,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에 질서를 유지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유교 가르침이다.

그리고 사회윤리가 아니라 가족윤리다. 해서 가족에서 가문으로 확장된 것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두 살 많다고 어린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행동하라는 뜻도 포함 되어있지 않다.

가문에서 항렬(行列)을 나이보다 우선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런데도 나이를 완장처럼 차고 사회 속에서 어른 대접 받기를 요구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에서 조직에서, 어른이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행동을 하지 못하면 사회갈등은 더 깊어 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이든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그들에게 경험과 연륜, 지혜와 폭넓은 교양과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었지 깜냥도 안 되면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을 억압하고 자신들이 기득권만을 요구한다면 노욕(老慾)이나 다름없다.

요즘 ‘나이가 벼슬인가’ 라는 비아냥이 정치권에서 자주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세대차이가 있는 여야 국회의원간 '야', '감히 어디서' 등의 발언을 놓고 충돌한데 이어 국민의 힘 대표경선에서 ‘나이와 선수(選數)’를 놓고 후보자간 벌어지는 세대 갈등이 점입가경이어서다.

“나이를 이유로 개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소외시키는 사회는 퇴보할 수 밖에 없다”는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