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수세(樹勢)가 드러난 뽕나무.(사진=김우영 필자) 
봄을 맞아 수세(樹勢)가 드러난 뽕나무.(사진=김우영 필자) 

기록에 따르면 정조는 수원일대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조선시대 왕들 가운데 가장 많은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후대 사람들은 ‘식목왕’이라고 부른다.

특히 수원지방에 엄청난 수량의 식목을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뽕나무다. 이는 당시의 여러 기록에도 나온다.

김은경 산림자원학 박사는 2016년 펴낸 저서 ‘정조, 나무를 심다’(2016, 북촌 펴냄)에서 정조대왕이 화성에 뽕나무 1만 그루를 심도록 했다고 밝힌다.

‘리더라면 정조처럼(2020, 더봄 펴냄)'이란 책을 내 화제가 된 김준혁 교수도 ‘먼 미래를 내다보고 식목정책을 추진하다’란 글에서 정조가 뽕나무를 심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조는 첫 번째로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 일대에 본격적인 나무 심기를 했다. 더불어 팔달산 자락에 만든 화성행궁 후원과 팔달산에도 많은 나무를 심었다. 소나무, 뽕나무, 잣나무 등 목재로 사용될 수 있는 나무와 유실수(열매맺는 나무)를 적극적으로 심었다. 특히 뽕나무는 양감의 효과와 더불어 군사용 활의 주재료이기도 했기에 더 많이 심었다. 탄력성이 강한 뽕나무는 대나무와 함께 활의 주재료였다.”

 그 많던 뽕나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기록에는 수원 화성 인근에 뽕나무 수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당시에 심은 것으로 짐작되는 뽕나무 거목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두 그루 중 한 그루는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아직도 청청한 모습이다. 물론 노쇠해 말라버린 가지도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 더욱 보살핌이 필요한 나무는 성벽 쪽의 나무다. 여름이 됐어도 줄기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 시급한 보호조치가 있어야겠다. 

뽕나무 두 그루. 서쪽 나무는 보호조치가 시급하다.(사진=김우영 필자)
뽕나무 두 그루. 서쪽 나무는 보호조치가 시급하다.(사진=김우영 필자)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은 지난해 6월 1일 경남 양산 천성산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조계암에서 수령 200년 이상의 뽕나무가 발견돼 ‘장수 뽕나무 당산제’가 봉행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천성산 조계암(주지 운암 스님)은 6월1일 경내에서 ‘장수 뽕나무 당산제’을 봉행했다. 나무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기 위한 이날 의식은 오프닝 대금 독주, 신신청, 인사말, 시 낭송, 시식, 사진 촬영 등으로 전개됐다고 한다.

다음은 기사의 일부분.

“이날 장수 뽕나무를 처음 발견하고 확인한 동진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나무와의 인연을 소개했다...(중략)...“이 나무가 재래종 산뽕 연리목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고 이렇게 오랜 세월 천성산을 지켜주고 도량을 외호해 주는 나무라는 사실에 고마움이 사무쳤다” “이번 첫 당산제를 통해 장수 뽕나무의 가치를 알리고 더불어 코로나19의 즉득 퇴치와 국운 융창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이번에 발견된 수원의 뽕나무 고목 앞에서도 당산제 같은 행사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나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훼손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영택 시의원, 김준혁 교수, 염상덕 수원문화원장, 김충영 박사 덕분에 이 뽕나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수원문화원 실무자인 최중영 사무국장과 김경란 팀장, 이성우 주임도 이 뽕나무와의 사랑에 빠져 틈 날 때마다 한 번씩 둘러보고 간다. 고맙다.

하루빨리 보호수나 노거수로 지정돼 보호를 받게 되고 지금 살아온 세월보다 더 오래도록 무병장수하게 되길 바란다.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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